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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태원댄싱머신 May 08. 2020

버스와 우울증의 정면충돌

 _고요 「나는 내가 왜 살아야 하는지 몰랐습니다」

제목부터 상투적이었다. 요즘 유행하는 힐링 느낌 문장형 제목. 주제도 뻔했다. 우울증 극복기라... 죽고 싶지만 떡볶이에 순대가 먹고 싶은 사람이 상담 받고 약을 먹었다 끊었다 반복하며 순례를 떠나는 수많은 우울증 책들이 서점에 쌓여있지만, 한번도 들춰보지 않았다. 우울증은 나와 상관없는 이야기였다. 그런 책을 핑크색도 살구색도 아닌 어정쩡한 표지 색에 홀려 읽게 되었다.


뉴스에 나온 굵직굵직한 사건과 뭔지 모르지만 어마어마하게 느껴지는 고통, 찔끔찔끔 눈을 자극하는 감동. 저자의 삶에 한 대 얻어맞은 느낌이다. 역시 필력이 깡패구나... 감탄하며, 맞아서 얼얼한 부위를 쓰다듬었다. 전혀 모르는 분야인데도 정신없이 빠져들게 만드는 글이었다.



저자는 20년간 우울증과 함께 해왔다. 이를 인정하고 싸우고 회복하는 과정에서, 오히려 더 다치고 다시 극복하는 이야기다. 버스 사고는 우울증과 정반대 방향에서 나타나 정면충돌 한다. 저자는 사고에서, 그리고 우울증에서 천천히 일어나고 있다.



우울증을 다룬 영화 「멜랑콜리아」가 생각난다. 우울증으로 괴로워하는 주인공 저스틴은 항상 죽음을 생각한다. 심지어 본인의 결혼식에서도. 어느 날 소행성이 지구를 향해 달려오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영화는 클라이맥스로 향한다. 이상한 건 여기부터다. 저스틴은 닥쳐올 죽음 앞에서 우울증에서 벗어난다. 반대로 현실을 성공적으로 잘 살아가던 인물은 소행성의 궤도를 확인하고 확신한 순간, 삶에서 도망쳐 버린다. 철학자 한병철이 말하듯, 부정성은 치유와 각성을 낳는다.


파국적 재난은 뜻하지 않게 구원으로 역전된다.
 _한병철 「에로스의 종말」


우울증은, 내가 아픈 건지 아니면 약한 건지 헷갈리게 한다. 그래서 약을 먹지 않고 버텨야 하는지, 약을 꾸준히 먹어서 버텨야 하는지 혼란스럽다. 저자도 마찬가지의 고민을 해왔다. 하지만 버스에 깔리면서 분명히 느낀다. 나는 분명히 아팠던 거구나, 나약한 게 아니었구나, 하는 깨달음을 얻는다.


버스에 깔린 채 생각했다. 우울증은 늘 생각했던 대로 약해빠진 나의 도피처였을까. 세상에 적응하지 못한 패배자의 투정이었을까.
아니었다. 구조대가 온다면, 어쨌든 버티면 살 수 있었다. 버티면 살 수 있다는 점에서 우울증과 버스 사고는 같은 선상에 있었다.
고통의 정도는? 비슷했다. 놀랍게도 비슷했다. 멀쩡히 편안히 누워 있는 게 아니었다. 온몸이 구겨진 채 깔려 숨도 제대로 못 쉬는 엄청난 짓눌림의 고통 속에 있었다. 일 분이 한 시간처럼 느껴지는 고통 속에 있는데, 극심한 우울증으로 침대 위에서 몸부림칠 때의 고통과 그다지 차이가 나지 않았다.
우울증은 누군가에게 보이기 위해 앓는 척하는 쇼가 아니었다.
 _고요 「나는 내가 왜 살아야 하는지 몰랐습니다」


저자는 이제 우울증과 잘 지내고 있다. 역시, 싸우면 다 친해진다.


이젠 적이 아닌 친구로서, 강아지처럼 작고 귀여워진 우울증과 함께 살아가고 있습니다. 아주 긴 혼란과 고통의 터널을 지난 후에야 남들처럼 일상을 평범하게 아파하며 살아갈 수 있게 된 겁니다.
 _고요 「나는 내가 왜 살아야 하는지 몰랐습니다」


★★★★나도 강아지처럼 작고 귀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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