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이 하나둘 올라온다. 날씨가 좋아지니, 조경 산업도 바쁘게 돌아가는 듯하다. 공원을 걸어보면 심은지 얼마 안 된 초록이들이 줄지어 있다.
나는 그 순간에 빠져들지 못하고 사진이나 찍고 있다. 어차피 사진은 꽃을 그 순간을 오롯이 담지 못하는데..
나는 너를 그렸다
내 사랑을 묶어 두려고
그러나 내 손에는 액자만 들려 있다
_두르가 랄 쉬레스타 「사랑의 그림」 부분
라고 생각했다. 기술의 발전을 너무 얕봤다. 갤럭시 S20이 나오고 나서 상황이 바뀌었다. 여자친구의 폰으로 영상을 찍었더니, 알아서 영상 중에서 좋은 사진을 몇 개 추출해준다. 핸드폰이 직접 골라준 사진은... 완전 느낌 있다. 내가 찍은 것보다 잘 찍었다. 나도 폰 바꿀까나.
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 폰은 팬택과 큐리텔과 스카이가 만나서 야심차게 내놓은 유작, 아임백이다. 각진 디자인이 세련되었다. 느리고 멈추고, 앱 하나를 설치하려면 다른 앱 하나를 지워야 하지만, 그리고 가끔 스스로 꺼졌다 켜지지만, 그래도 안 깨진다. 너무 어두우면 사진이 잘 안 나오고, 너무 밝아도 사진이 잘 안 나온다. 반짝반짝 햇살도 사진 찍느니 그냥 그 따스함을 느끼고, 파릇파릇한 나무도 사진을 찍기보다 한 번 더 둘러본다.
너무 좋은 카메라를 갖는 대신, 그 순간을 갖는다.
라고 적고... 이걸 적은 내가 너무 민망해서 소름이 돋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