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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태원댄싱머신 Jun 21. 2020

이사이사

여자친구가 이사를 했다. 가서 도왔다. 뭐든지 척척 잘 해내는 친구라, 왼손처럼 돕기만 했다. 열심히 들고 나르고 내려놓았다. 삼일간 땀 흘리며 도왔다. 삼일째가 되자, 가장 재미있는 부분이 시작되었다. 해체와 조립이었다. 나였다면, 그냥 이삿짐 센터 불렀을 텐데, 여자친구는 직접 분해하고 자동차에 넣어서 옮기고 다시 하나하나 조립한다. 탁자는 다리와 상판이 분리된다. 화장대는 다리가 분리되고 가운데가 분리되면서 양쪽으로 나뉜다. 의자는 위 아래가 떨어진다. 책장은 나무판 하나하나를 전부 해체했다. 옷장도 서랍을 꺼내고 나서 다 분리했다. 가장 큰 침대도 마찬가지다. 만약 분해하지 않았다면, 작은 가구는 자가용으로 여러번 옮기거나, 큰 가구는 사람을 불러야 했을 거다.


삼일이나 이사를 했느니 짐은 여기저기 흩어져 있고, 어디에 뭐가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안경을 찾다보면 티가 보이는데, 막상 티를 찾으려고 하면 그릇밖에 없다. 식사를 하려고 그릇을 찾는데 옷가방만 뒤지고 있다. 정신없이 일하면 날이 금방 어두워진다. 하루가 빨리 간다. 일과를 끝내면 샤워를 하고 눕는다. 몽테뉴를 꺼내서 읽고 김기택을 꺼내서 읽는다. 여자친구가 웃는다. 하도 깔깔대며 재미있어 하길래 물었더니, 어떻게 책을 그렇게 잘 찾느냔다. 눈썰미도 없고, 물건의 위치도 잘 못 찾는 사람인데, 책의 위치는 기가 막히게 잘 알고 있단다. 생각해보니 그렇다. 당장 입을 티는 어디에 있는지 모르는데, 나중에 읽을 책은 가방에 고이 모이 모셔놓았다.


울리지 않는 핸드폰은, 울릴 때가 되어야, 어디에 두었는지 알게 된다.
울리지 않는 책은, 울고 싶을 때가 되어도, 어디에 두었는지 찾지 못 한다.
 「울지마울긴왜울어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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