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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태원댄싱머신 May 31. 2020

결론은 알고 있지만

 _로버트 그린 「인간 본성의 법칙」

여자친구는 가끔 화를 낸다. 달려들어서 물기도 하고, 컹컹컹컹 짖기도 한다. 나는 반대다. 둔하고 무심한 편인데 겁이 많다. 서운한 마음이 들면 마음의 문을 닫는다. 그래서 여자친구와 싸울 때면, 여자친구만 흥분해서 불만을 토해내고, 나는 묵묵히 듣기만 한다. 머리 속에서는 조목조목 반박도 하고 하소연도 하면서 대토론이 벌어지지만, 한 마디도 음성화되지 않는다. 말을 해야하는 걸 알지만,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두려움에 몸이 굳어버린다.


이럴 때마다 이상하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참 이상해.


이성적으로 분석을 해보자면, 둘 다 성격이 좀 이상하다. 당황스럽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하다.



초록로봇에 의하면, 원래 사람은 다 이상하다. 원래 사람은 비이성적이라고, 그게 본성이라고, 이야기하는 책을 읽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말해서 애초에 우리가 길을 잘못 들게 되는, 그래서 잘못된 결정이나 오판을 저지르게 되는 원인은 따로 있다. 바로 우리의 뿌리 깊은 '비이성적 성향'이다. 우리 마음에서 정확히 감정이 지배하는 부분 말이다.


우리는 감정적이고 비이성적이다. 일을 그르치는 것도, 싸우는 것도, 다 우리의 본성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할까. 본성이라면, 바뀌지 않는다는 것 아닌가. 맞다. 그래서 저자는, 바꾸려 하지 말고, 그냥 보라고 말한다.


그러지 말고 사람을 하나의 현상처럼 대하라. 혜성이나 식물처럼 가치판단의 여지가 없는 대상으로 보라. 그들은 그냥 존재하고, 모두 제각각이고, 삶을 풍부하고 흥미롭게 만들어주는 존재일 뿐이다. 사람들이 무슨 말이나 행동을 하면 저항하거나 바꾸려 들지 말고 연구 대상으로 삼아라. 사람을 이해하는 일을 하나의 재미난 게임으로 만들어라. 퍼즐을 푸는 것처럼 말이다. 모든 것은 인간들이 벌이는 희극의 한 자면일 뿐이다. 맞다. 사람들은 비이성적이다. 하지만 당신도 비이성적이다.


싸움이 끝나고 다시 서로에 대한 이해를 되찾는 과정은 언제나 관찰로 차있었다. 왜 서운했었는지, 왜 화가 났었는지, 그렇게 행동 했을 때 어떤 생각을 한 건지, 그 행동의 정확히 어떤 부분이 기분이 나빴는지, 하나하나 찾아간다. 정말 극적이게도 대화를 하다보면, 하나의 결론으로 수렴한다.


우리는 정말 이상해.


이상해도 하는 수 없다. 계속 찾고 있다. 싸우면서 여자친구의 이상함을 연구하고, 내 이상함을 발견한다. 여자친구의 이상함을 연구할 때보다 내 이상함을 발견하는 순간이 더 놀랍다. 그걸 내가 몰랐다니. 나는 나를 정말 모르는구나. 새삼스레 놀랍다.


싸우면서 내 감정의 밑바닥을 확인하고, 그때 건드렸던 내 자존심은 무엇인지 찾는 과정은, 당연히 쉽지 않다. 내가 그런 사람이었다는 걸, 겨우 그것 때문에 기분이 나빴다는 걸, 입을 움직여 스스로 말해야 한다. (말하지 않으면 싸움이 끝나지 않으니 결국 말하게 되기는 한다.)


이때 가장 위험한 것은 당신의 자존심이다. 자존심은 무의식적으로 당신에 대한 환상을 계속 유지하려고 한다. 그게 순간적으로는 위안이 될지 몰라도, 길게 보면 당신을 방어적으로 만들어서 새로운 교훈을 얻거나 더 발전할 수 없게 만든다. 약간은 거리를 두고 심지어 웃음기를 띠고 당신의 행동을 관찰할 수 있는 중립적 위치를 찾아내라.


그래도 나에 대해 알아주고, 이해해주는 누군가가 있다면, 그건 나와 여자친구가 아닌가. 재미있고, 고맙다. 알아봤자 이상하다는 결론에서 벗어날 수는 없지만...


내 안의 낯선 이에 관해 좀 더 명확히 알게 되면, 그 낯선 이가 실은 내 일부라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리고 생각보다 우리가 훨씬 더 불가사의하고 복잡하며 흥미로운 존재임을 알게 될 것이다. 이 점을 알고 나면 우리 인생의 부정적 패턴을 깨버릴 수 있다. 더 이상 변명을 꾸며댈 필요도 없고, 내가 하는 일 혹은 내게 벌어질 일에 대해 더 많은 주도권을 쥘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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