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서울로 출발할 시간이다. 책장을 조립하다 나머지는 여자친구에게 맡기고 일어났다. 사실 처음부터 여자친구에게 다 맡기고 있기는 했다. 보조 역할을 열심히 수행하다 일어난다. 부랴부랴 샤워를 하고 집을 나섰다.
택시를 기다릴까 아니면 택시를 부를까. 항상 고민이 되는 순간이다. 시간이 넉넉하면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되기 때문에, 보통 택시를 부른다는 건 급하다는 뜻이다. 열차 출발 시간이 30분 남았다. 택시를 부르면 가까운 거리에 있는 택시가 바로 잡히기는 하지만 돌아돌아 오다보니 5분 정도는 소요된다. 반면 길가에서 택시를 기다린다면 1분 안에 바로 잡을 수도 있고, 10분 넘게 기다려도 못 잡는 경우도 있다.
택시가 많은 곳을 안다면 그곳으로 가서 기다리지만, 보통은 어플을 켠다. 오늘도 포항역을 찍고 택시를 요청했다. 가까운 곳의 택시가 바로 요청을 받았지만, 역시나 돌아돌아 오느라 5분이 걸렸다. 이제 25분 남았다. 시간이 대략 얼마나 소요될지, 기사님에게 물었다. 30분 정도 걸리지 않겠냐 한다. 음... 한 마디 툭 던진다. 제가 52분 기차인데요... 기사님이 깜짝 놀랐는지 재채기를 한다.
기사님 눈빛이 달라지고 속도가 올라간다. 일단 경로를 이탈한다. 아마 과속을 할 수 있는 도로로 가는 게 아닌가 싶다. 원래 도착 예상시간은 52분이었다. 기차가 52분 출발이니, 무조건 못 탄다. 경로를 이탈하자마자 예상시간은 55분으로 늘어났다. 신호 위반을 3번 정도 한 것 같다. 예상시간은 50분으로 당겨졌다. 제한속도 위반도 2번 정도 한 것 같다. 예상시간은 48분으로 당겨졌다. 그리고 몇 번의 '경로를 이탈하였습니다'가 나오고 포항역에 도착한 시간은 45분이었다. 오렌지 주스를 하나 사가지고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52분 정시에 열차는 출발했다.
여러가지 감정이 오갔다. 먼저 감사함. 52분 열차라고 이야기하지 않았다면, 분명 제시간에 열차를 타지 못했을 것이다. 다음에는 미안함. 나 때문에 기사님이 신호 위반과 속도 위반을 여러번 하게 되었다. 위험한 상황이 벌어졌을지도 모르고, 범칙금 지로가 날아올지도 모른다.
그 다음으로, 조금 이상하지만, 기사님에게 성취감을 안겨주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손님이 장소를 말하면, 내비게이션이 안내하는 대로 운전하는, 따분한 일상에서 잠시 시원한 바람을 쐰 것은 아닐까.
나는 중소기업을 방문하는 일을 한다. 대부분의 회사는 제조업이나 도소매업이다. 대부분 비슷비슷하다. 가끔 특이한 업태나 종목을 만나면, 일단 땀이 난다. 긴장이 되고 걱정이 밀려온다. 장시간에 걸친 회의와 시행착오 끝에 가장 적절한 해결방안을 찾아내면, 어마어마한 쾌감이 밀려온다. 회사에서는 거의 한 마디도 안하지만, 이런 경우가 있다면 수다쟁이가 된다. 오늘 이런 업체를 만났는데 이러저러하게 해결했다고, 신나게 떠든다.
택시를 내리면서 너무 고맙다고 거듭 감사함을 표했다. 제시간에 열차를 탈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기사님은 대답했다. 기분 탓인지 모르겠지만, 택시 문을 닫으며 기사님을 보았는데, 만족스러운 표정을 언뜻 본 것도 같다.
물론 못 봤다. 마스크를 썼으니까!!
목표를 설정하면 목표를 설정하지 않았을 때보다 나아진다. 삶의 방향이 정해지고 무언가를 성취할 수 있다. 좀 더 질 높은 경험을 할 수 있고, 좀 더 많은 기회를 잡을 수 있다. 그런데 목표 설정으로 이런 일들이 벌어지기 위해서는 추가로 필요한 게 있다. 목표 설정이 구체적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_최성락 「나는 자기계발서를 읽고 벤츠를 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