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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태원댄싱머신 Aug 07. 2020

재미있는 혐오

 _석승혜, 김남옥 「불안한 사냥꾼의 사회」

막연히 느끼던 부분을 체계적으로 분석하고 차곡차곡 설명해주는 책을 읽으면 뭔가 환해지는 느낌을 받는다. 개념화하고 도식화되면, 왠지 모르게 암기를 해버리고 싶고 시험이라도 치고 싶은 마음이 든다. 오랜 수험생활을 통해 암기 과목을 공부하며 생긴 부작용인지 모르겠다.



이 책은 혐오를 다룬다. 혐오가 무엇인지 대략 느낌은 알고 있지만, 이론은 처음 접했다. 눈 앞이 환해진다. 어디 가서 아는 척하면서 설명하고 싶다.


불안


혐오의 시작은 불안이다. 유동적인 사회에서 개인은 자신 외에 어느 것도 믿고 의지할 수 없다. 불안이 사회적 갈등을 낳고 여기서 분노가 나오고 이는 다시 타인에 대한 혐오를 야기한다.


자기 집단이 무시당하거나 저평가된다고 느낄 때, 정체성을 긍정적으로 보존할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이 외집단 폄하이기 때문이다.


운동


사회운동은 분노를 하나로 모은다. 자본가가 문제라거나 구조가 문제라거나 나름의 대상을 설정해서 해결하려고 노력한다. 혐오의 정치도 분노를 모아서 나름의 논리를 펴는 것은 비슷하다. 차이가 있다면 혐오의 방향이 문제의 원인으로 가지 않고, 만만한 상대를 찾는 것이다.


수침심을 느낀 사람은 그것을 안겨 준 대상과 직접 마주하기보다는 회피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인접한 곳에서 쉽게 이길 수 있거나 굴욕감을 줄 수 있는 타자들을 찾는다. 수치심을 회복하고 치유하기 위해 타자에게 보복하고, 자신의 우월한 정체성을 억지로 되찾으려 한다는 것이다.


프레임


혐오의 프레임도 세대별로 달라진다. 태극기 집회에 나가는 노인들은 국가, 충성, 질서 등을 강조한다. 젊은 세대는 아무리 일베를 한다고 해도 여기에 익숙해지기는 어렵다. 대신에 자유와 독립, 그리고 공정이라는 가치에 손을 댄다. 하지만 공정성은 결국 기득권층의 이익을 보호하는데 활용된다. 사람은 다 다른데, 어떻게 공정하게 경쟁하는 게 가능할까.


그러나 일베는 공정성과 배려를 대립되는 개념으로 독해하고, 공정성은 사회 전체의 형평성을 고려하지 않는 개인 대 개인의 교환 관계로만 상정한다. 배려 없는 공정성은 각기 다른 자원과 능력을 가진 사람들로 구성된 사회에서 약한 사람이 도태될 수밖에 없는 기득권의 구조를 강화한다.



메갈


메갈 이야기도 빠질 수 없다. 여성혐오를 혐오한다는 취지의 메갈은 형식적으로 혐오의 방식을 취한다. 하지만 감정 구조는 다르다. 일베가 불안에서 시작한다면, 메갈은 공포에서 출발한다. 범죄 공포(일상적으로 노출된 성폭력, 살인 위협), 시선 공포(노출과 품평, 불법 촬영), 그리고 결혼 공포. 이렇게 3가지로 나뉜다.


남성은 지위 상실과 청년 세대의 불안정에 대한 불안을, 여성은 안전에 대한 공포와 불안을 혐오 문법으로 표출한다.


세대


기존의 분배 갈등은 계급 갈등이다. 잘 사는 사람과 못 사는 사람들이 분배를 놓고 다투었다. 지금은 세대 갈등과 겹치면서 조금 이상한 형태가 되었다. 가난한 젊은이는 노인을 욕한다. 하지만 태극기 집회에 나오는 노인 역시 상류층이 아니다. 금수저 청년과 부유한 노인은 여기서 쏙 빠진다. 남는 것은 을들의 전쟁이다.


하지만 청년이 연금충, 틀딱충 등으로 부르는 노인은 연금에 목숨 걸고, 지하철을 타고 다닐 수밖에 없는 이들이다. 다시 말해 흙수저 청년과 동일한 계급에 놓여 있는 하층 내부의 노인들이다. 노인들은 이들의 막말에 상처를 받고, 자신들의 청년 시절과 비교하여 이기적이고 무책임한 '요즘 것들'을 비난한다.



★★★★ 아주 재미있다. 신나서 여자친구에게 설명해줬더니 재미없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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