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김현아 「감정노동, 그 이름의 함정」
감정노동이란, 미국의 사회학자 혹실드에 의해 처음 개념화된 용어로, "개인이 자신의 기분을 다스려 조직에서 요구하는 적합한 표정이나 신체 표현을 외부로 드러내는 것"을 뜻한다. 혹실드는 육체노동이나 정신노동만을 노동의 범주로 간주하던 과거와는 달리, 현재는 감정도 하나의 자원으로써 판매되기에 이르렀음을 밝히고 이러한 감정노동은 특히 '여성적' 특성이라 간주되던 공감과 배려, 돌봄과 같은 마음 노동들의 집약체임을 강조한 바 있다.
희망카드사는 고개 상담 센터의 운영을 다수의 콜센터 아웃소싱 전문 업체에 위탁하고 있다. 단일한 아웃소싱 업체와 계약 관계를 맺지 않고 다수의 아웃소싱 업체들과 계약을 맺음으로써, 희망카드사는 업체 간 실적 경쟁을 유도하여 저비용으로 높은 콜 실적과 높은 서비스 품질 지수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희망카드사는 아웃소싱 업체들의 실적 평가를 통해 매년 도급비를 재산정하고, 아웃소싱의 연장 계약 여부를 결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아웃소싱 업체들 간의 실적 경쟁은 불가피하다.
이러한 아웃소싱 업체들 간의 경쟁 체제는, 콜센터 상담원의 노동강도 강화로 이어진다. "할당된 콜 수를 채우려면 화장실도 못 간다"는 말은 상담원들 사이에서 공공연한 사실이다. 매일 처리해야 하는 목표 콜 수가 정해져 상담원들에게 전달되고, 관리자는 상담원들의 실시간 콜 처리 수를 수시로 사내 메신저를 통해 전달함으로써 심리적 압박을 가한다. 그리고 달성해야 하는 영업 실적 또한 상담원들에게 압박의 기제가 된다. 콜 실적이나 영업 실적을 달성하지 못하면 소속 팀 팀장(슈퍼바이저)으로부터 인격적 모독을 당하는 일도 잦다.
열악한 근무 환경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공식적 문제 제기가 이루어지지 않는 것은 상담원들의 잦은 이탈과 아웃소싱의 고용 형태로 인한 노동조합 결성의 어려움에서 비롯된다. 노동조합의 부재는 상담원들이 처한 열악한 근무 환경에 대한 문제 제기를 공식적으로 제기할 만한 루트를 사실상 차단한다. 이에 따라 상담원들은 개인적 차원의 해결로서 퇴사라는 방법을 손쉽게 택하는 것이다.
여성들이 주로 수행해온 특정 노동에 대한 막연한 이미지는, 이들의 노동을 전통적인 성역할의 연장선상에서 이해하게 함으로써, 해당 노동에 대한 정당한 직무 평가를 방해해왔다. 즉 전통적 성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은 여성들이 노동시장에서 수행하는 노동의 내용을 왜곡해서 이해하게 함으로서, 결과적으로 여성의 일을 상대적으로 쉽고, 안전하고, 저임금의 무가치한 일로 평가절하하게 만들어 온 것이다.
대표적 여성 집중 직종의 하나인 콜센터 노동이 오랫동안 표준화된 단순 반복적 업무로 간주되며 사회적으로 저평가되었던 것 또한 이러한 맥락 안에서 해석될 수 있다. 특히 콜센터 상담원에게 요구되는 자질인 의사소통 능력과 공감 능력, 친절함 등이 전통적 여성의 특성과 일치한다는 통념은 해당 노동을 여성에게 적합한 일, 혹은 여성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저숙련, 저임금의 노동으로 인식하게 만들었다.
더욱이 자신의 직무 능력을 끊임없이 의심하게 만드는 콜센터의 과잉 경쟁 시스템은 상담원들을 쉽게 좌절시킴으로써, 상담원들이 자신의 직업과 직무 능력에 대한 자부심을 갖지 못하게 만들고 있다.
희망카드 콜센터에서 참여관찰하는 3개월 동안, 필자는 어려운 상담 업무 때문에 무척이나 고생을 했다. 숙지해야 하는 엄청난 양의 업무 지식을 시간의 부족으로 미처 습득하지 못하거나 배워도 한 번에 이해하지 못하는 일이 빈번했고, 미숙한 대응과 오안내로 인해 밀려오는 민원을 감당하지 못하고 울기도 했다.
물론 감정 관리 능력은 콜센터 상담원에게 필요한 필수적 자질이며, 이들이 수행하는 감정노동은 결코 단순한 친절로 획일화될 수 없는 숙련을 필요로 하는 노동이다. 그러나 문제가 되는 것은, 이들의 직무를 단순히 감정노동만으로 설명하려는 현행 논의의 방식이다. 서비스직 노동의 주요한 직무 특성인 감정노동의 가시화를 통해, 오히려 서비스직 종사자들이 실질적으로 수행하고 있는 다양한 직무 요소가 비가시화되고 있는 현재의 딜레마는, 사실상 감정노동 개념의 잘못된 정착과 사용에 의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