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문보영 「준최선의 롱런」
나는 간헐적으로 행복하다. 행복한 날에는 일기장에 사실만 적는다. 그날의 날씨, 거리, 먹은 음식, 음식의 맛, 색깔, 모양, 스쳐 지나간 행인의 모자, 모자에 붙은 먼지, 누군가의 표정, 그것의 색깔과 모양.
소중한 기억이 있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그것을 계속 끌고 가는 것일 텐데 이 소중한 기억은 휘발성이 남달라서 자꾸 사라지려 든다. 불행은 접착성이 강해서 가만히 두어도 삶에 딱 달라붙어 있는데, 소중한 기억은 금방 닳기 때문에 관리를 해줘야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액자를 세워 두는 것으로 추억을 상기하려고 한다. 그런데 액자만큼 눈에 안 보이는 것도 없다. 그래서 추억은 가지고 돌아다니는 것이 좋다. 체감할 수 있도록 등에 메고 다니거나, 가방에서 책을 꺼낼 때 이따금 눈이 마주치도록 하거나, 손이 긁힐 수 있게 새로 출력해서 종이의 사면을 날카롭게 한다거나. 좋은 기억에 관한 트리거를 덫이나 지뢰처럼 심어 두는 것이다.
별거 없는데 계속 보게 되는 게 브이로그의 요상한 매력이라면 그게 브이로그의 본질인지도 모른다. 별거 없음을 우리 삶에 초대하고 받아들이는 것 말이다. 브이로그를 보면서 자극이나 현란함, 특정 주제 혹은 재미를 기대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사람들은 한 인간이 하루를 얼마나 평평하게 그리고 정직하게 살아 냈는지 구경한다. 별일 없는 나날들에 대해, 그 무의미에 반발하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의 모습을 구경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