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김혜진 「9번의 일」
퇴근하고 카페에 갔다. 강남역 근처, 번화가를 조금 지나 언덕을 오르면, 탁 트인 뷰에 바람이 살랑살랑 부는 카페가 있다. 아보카도 샐러드를 시키고, 뜨아 (아메리카노 뜨거운 거)를 마신다. 건강을 위해서 (혹은 인스타그램 목적으로) 가끔 이렇게 채식을 한다. 닭가슴살 비스무리한 게 조금 들어있었던 것 같기도 한데, 암튼 풀때기가 이렇게 많으니 사실상 채식이다.
고상하게 책을 하나 꺼내든다. 「9번의 일」 일을 9번이나 한다는 건가? 거칠거칠한 표지가 그럴듯해서 들고 다닌다. 별로 두껍지도 않은 책을 일주일 내내 들고 다니는 것은 과시용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책이 음울하고 답답하기 때문이다.
주인공 이름은 안나온다. 그냥 '그'다. 정년이 보장되는 안정적인 직장에 다니고 있었는데, 사회 분위기가 바뀐다. 위기가 찾아와서, 오래 다닌 사람들은 하나둘 밀려나거나 쫓겨난다. 그는 퇴사를 거부한다. 다른 직무로 몰리고, 다른 지역으로 내몰린다. 따돌림당하고 저성과자 낙인이 찍혀도 땀 흘리며 버틴다.
아침에 일어나면 하루가 까마득하게 길다는 생각이 들었고 다시 잠이 들 무렵이면 하루가 또 이처럼 순식간에 지나버렸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는 손에 잡히지 않고 손바닥에 빗금을 그으며 휙휙 지나가 버리고 마는 어떤 것이었다.
책을 덮는다. 휴...
한숨이 나온다. 중간까지의 이야기는 이렇다. 답답한 이야기. 상황도 주인공도 고구마 먹은 것처럼 답답하다. 능력이 없으니까, 이렇게 고생하지. 애초에 자격증이라도 있었다면, 학벌이라도 좋았다면, 이런 상황까지 가지는 않았을 텐데... 이렇게 생각하니, 소설은 어느새 자기계발서가 되어버린다. 이런 고생 하지 않으려면, IMF가 와도 잘리지 않으려면, 역시 공무원이지.
눈을 돌려 카페 한쪽 벽면을 보았다. 얼룩말이 달리고, 누우가 달리고, 치타가 달린다. 빔프로젝터로 벽에 영상을 쏘는데, 얼마 전부터 항상 같은 프로그램이다.
여기 주인이 동물의 세계에 빠졌나.
포크를 들어 아보카도 샐러드를 푸욱 찍었다. 우걱우걱 씹으며 멍하니 바라보았다. 강을 건너는 누우를 보며, 눈만 내놓고 누우를 기다리는 악어를 보며, 아메리카노를 마셨다. 그리고 악어에게 먹히는 누우를 볼 때까지만 해도 나는 괜찮았다. 눈물은.. 눈물은 사자에게 잡힌 누우를 보면서 흐른 게 아니다. 아슬아슬하게, 사자에게 잡힐뻔 했지만, 다른 누우 덕분에 간신히 살아남은 누우. 그 누우에게 화면이 잠시 머물었을 때, 나는 누우처럼 달리는 심장을 간신히 붙잡았다.
다른 누우보다 조금 더 빨리 뛰어서 간신히 살아남은 누우. 그건 마치, 나... 같았다. 코로나19로 회사가 어려워지고 얼마전 동기는 부서를 옮겼다. 나는 간신히.. 정말로 간신히 살아남았다. 이번달 영업 실적이 조금만 더 낮았어도 위험했다.
그는 단순히 달렸을 뿐이다. 다른 누우보다 조금 더 앞서려고, 먹이지 않기 위해, 그냥 달렸을 뿐이다. 다른 누우가 더 빨랐을 때 그는 치타에게 잡아먹힐 뻔했다. 그리고 잡아먹히는 게 나을 뻔했다.
한 사람이 버티면 결국 다른 한 사람이 나가야 합니다. 말은 안 해도 다들 연장자가 자진해서 나가주길 바라고 있어요. 그게 가장 보기도 좋고요. 아시다시피 연차가 얼마 되지 않은 사람들은 조건이 그리 좋지가 않습니다.
그는 퇴사를 종용받았다. 다른 동료에 비해 사정이 더 어려운 것도 아니었다. 세입자를 못 구해서 걱정이기는 했지만 다세대주택의 건물주였다. 그런데도 퇴사를 선택하지 않고 버텼다. 다른 누우보다 빨리 달리지 않으면 잡아먹히기 때문이다.
결국 동료가 대신 퇴사했다.
다른 누우들과는 통성명 조차 하지 않는다. 어차피 누우인데. 누워서, 이름은 알아서 뭐할까. 너보다 빨리 뛰기만 하면 된다.
최요. 그냥 최라고 불러요. 이런 데서 피차 이름 알아봐야 좋을 게 뭐 있어.
모자를 눌러쓴 남자는 자신을 그렇게 소개했고 한마디 더 했다.
어차피 오래는 못 있어요. 당분간만 있으라는 거지.
하지만 그는 예상과 달리 오래 있었고, 사람들은 대놓고 따돌리기 시작한다. 초식동물의 특성이다. 뒤처지면 죽기 때문에, 다른 누우보다 조금 더 빨리 뛰거나, 다른 누우를 못 뛰도록 만들어야 한다.
처음에 그는 그냥 버텼다. 고민하고 갈등하면서 간신히 버텼다. 그를 버티게 해준 것은 일이었다. 일을 하면 고민을 덜 할 수 있다. 주어진 일만 하면 된다. 모두가 따돌리면 청소를 하고, 온 마을 사람들이 나서서 반대 집회를 해도 산을 밀어버리고 탑을 쌓았다.
그는 다만 그런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일했다. 일하는 동안에는 자신 내부를 뒤흔드는 어떤 것들을 잠재울 수 있었다. 그에게 일은 이제 뭔가를 지우고 잊기 위해 하는 어떤 것이 된 건지도 몰랐다.
처음 그의 달리기는 따롤림으로부터 버티는 일이었다. 회사가 그를 지방으로 보내고 월급을 깎고 전단지를 돌리게 해도 그는 버텼다. 그게 그의 달리기였다.
상황이 바뀌고, 하는 일이 달라졌다. 이제 그의 달리기는 순한 양보다는 양아치에 가까워진다. 가장 가까운 친구가 시위 중에 생을 마감했지만, 그는 일을 하기 위해, 오로지 일을 하기 위해, 시위하는 사람들을 밀친다.
어차피 위에서 하는 일입니다. 우리가 무슨 결정권이 있습니까. 우리는 그냥 시키는 대로 합니다. 월급 받는데 못 할 게 뭐 있어요. 시키는 대로 하는 거지.
결국 다른 누우들을 밟고 달린다. 밟힌 누우들이 비명을 지르지만, 그런 사소한 것들은 생각하지 않기로 한다. 일이니까.
그들은 그가 처리해야 할 일의 일부였다.
그래. 너는 애미 애비도 없냐. 네 부모가 이렇게 하라고 가르치더냐, 에라이 이 몹쓸 놈아!
그는 그런 식으로 자신에게 날아오는 말들을 나직이 읊조렸다. 그러자 자신이 정말 그런 사람이 된 것 같았고 그렇게 되어도 아무렇지 않은 것 같았다. 그보다 더한 것이 되어도 상관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해도 점점 더 난폭해지는 스스로를 막을 아무런 이유도 찾을 수 없었다.
고민을 멈추고 나서는 오로지 달리기에만 취한다. 열심히 일하면 다 잘 될 거라고 자위하며 가족들을 생각하며 버틴다. 스스로 도취된 것처럼 폭력 한가운데로 뛰어든다. 무자비한 동료들보다 조금 더 무자비해지기 위해 노인을 밀친다.
그의 달리기를 끝까지 읽고, 책을 덮으며 생각했다. 그는 9번 누우였구나. 3번 누우, 7번 누우가 잡아먹힌 다음에도 멈추지 않고 달리는 9번 누우였다.
아보카도 샐러드를 시켰는데, 아보카도는 조금이고 양상추와 양배추만 한가득이다. 그래 이것도 맛있지. 느리게 달린 누우는 잡아먹힌다. 빨리 달린 누우는 간신히 살아남는다. 빨리 자란 아보카도는 잡아먹힌다. 느리게 달린 누우와 빨리 자란 아보카도로 만든 샐러드를 우걱우걱 먹는다.
샐러드의 마지막 한 조각까지 포크로 콕 집어 먹어서 사실상 설거지까지 해버리는 내 모습은 마치... 초식동물 같았다. 아니. 나는 샐러드였다.
책을 읽으며 보낸 하루를 적었다. 그래서 일기이자, 독후감이다. 누군가는 이 책을 읽고 한나 아렌트를 떠올릴 거다. 악의 평범성. 누군가는 니체를 떠올릴 거다. 자기망각을 위한 노동. 끝까지 다 읽고 나니, 나에게는 누우와 달리기만 기억에 남는다.
★★★★★ 계속 달리다 보면 달리기를 잘 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