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태원댄싱머신 Aug 05. 2020

이상한 하루

이상한 생일을 맞이하고 있다. 나는 사교적이지도 않고 혼자 있는 걸 좋아하는 편이다. 아주 가깝게 지내는 사람도 많지 않다. 거기에다 기념일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편이다. 내 생일은 물론이고 가족들의 생일도 단톡방에서의 축하 인사 정도로 지나간다. 친구들을 초대해 파티를 벌이고 케이크에 꽂은 촛불을 부는 사람들이 보기에는 조금 이상해 보일 수도 있다.


내 생일은 항상 정적이었다. 가족들의 축하인사에 ㅋㅋ로 답한 뒤에 빨간 츄리닝을 입는다. 의식 같은 거 아니다. 평소에도 빨간 츄리닝을 입는데, 이 날도 마찬가지로 챙겨 입는다. 집 근처 카페, 브라운핸즈나 스타벅스로 간다. 챙겨온 책을 읽고 노트북에 독후감을 적는다. 카페 마감 시간이 되면 집으로 들어와 과일을 먹는다. 이것도 의식 같은 거 아니다. 원래 맨날 먹는 게 과일이다.


오늘은 조금 이상하게 시작했다. 아침에 일어났더니, 사람들이 오늘따라 일찍 일어났는지 축하인사를 보내왔다. 중학교 친구가 안부를 물었다. 고등학교 동창과 다음 주 합정에서 만나기로 했다. 같이 학원 다니던 친구도 연락을 해왔다. 군대 동기와는 다음 주에 청국장을 먹기로 했다. 내가 운영하는 독서모임 사람들이 다 같이 축하를 해왔다. 그중 한 명은 아침에 나한테 생일 축하한다고 말하고 저녁에서야 오늘이 본인 어머니 생신임을 기억해냈다. 이전에 운영했었던 독서모임 사람들이 스타벅스 쿠폰을 보냈다. 한번 놀러 간 다른 독서모임에 봤던 사람들도 오랜만에 안부를 물었다. 대학교 친구들, 같이 취업을 준비하던 사람들도 잘 지내냐며 축하인사를 건넸다. 회사 동료들도 아이스크림을 보냈다. 분명 작년까지도 혼자 조용히 보냈었는데, 갑자기 올해 이렇게 연락이 온다는 건 이유가 있을 것이다. 나는 바뀐 게 없다. 무엇일까. 평생 받았던 축하인사보다 더 많은 연락을 받았고, 평생 받았던 생일 선물보다 더 많은 스타벅스 쿠폰을 오늘 받았다.


코로나일까. 사람들이 사회적 거리두기 취지에 맞추어 '몸은 멀리 마음은 가깝게' 두기를 실천하는 것일까. 그래서 카톡 친구들의 생일을 반드시 챙기기로 올해 갑자기 마음 먹은 걸까. 일리가 있다.


그게 아니면 장마일 수도 있다. 일반적으로 장마는 6월 중순에 시작해서 8월 초면 끝난다. 그래서 내 생일(8월5일)이 되면, 보통은 놀러나갈 타이밍이다. 장마가 끝나고 무더위가 한풀 꺾인 터라, 산책을 하고, 여행을 가고, 데이트를 하기 좋은 시기다. 올해는 6월 24일에 시작한 장마가 8월 14일까지 간다고 한다. (중부지방 기준 예상) 비가 추적추적 오니, 옛 생각이 난 걸까.


그것도 아니면, 카카오톡 선물하기 시장이 커진 걸까. 2017년 카카오톡 선물하기의 거래액은 1조를 넘었다. 작(2019)년에는 2조를 넘었다. 선물 시장은 가격을 비교하지 않는 이상한 시장이다. 할인 상품이 있다면 오히려 구매하지 않는다. 생일에 축하한다는 말을 건네며 카카오톡으로 선물하는 건 이제 일상이 된 걸까. 올해 갑자기?


이상한 하루다.


하지만 단 하룻밤이었습니다. 아침에 잠에서 깨어 벌떡 일어나보니 본래의 경박하고 가식적인 어릿광대가 되어 있었습니다. 겁쟁이는 행복조차 두려워하는 법입니다. 목화솜에도 상처를 입습니다. 행복에 상처를 입기도 합니다. 상처를 입기 전에 어서 이대로 헤어지고 싶어 조바심을 내며 예의 어릿광대짓으로 연막을 둘러쳤습니다.
 _다자이 오사무 「인간실격」
매거진의 이전글 우리집은 장례식장이 되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