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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태원댄싱머신 Aug 09. 2020

뜬금없이 원피스를 입자

댓글


나는 뉴스를 포탈에서 소비한다. 이러면 안 되지 마음속으로 되뇌지만, 엄지를 움직여 카카오톡 뉴스를 보게 되는 건 어쩔 수 없다. 불수의근육처럼, 의지는 내가 어찌할 수 없다. 뉴스를 읽고 나면 자연스럽게 댓글을 보게 되는데, 정치기사는 댓글이 확실히 편파적이다. 다른 의견은 인해전술로 밀린다. 적어도 댓글에서는 민주당이 250석 이상은 차지한 느낌이다. 그러다보니 국민의당 기사, 미래통합당 기사, 정의당 기사라도 나오면 댓글란은 비난과 비판이 흘러넘친다. 뭐 자연스런 일이다.


진보


아무리 돈이 많고 아파트를 많이 소유한 갭투자자라도 민주당을 지지한다면 점잖은 선비 가면을 쓰고 에헴 하며 종부세에 찬성표를 던진다. 자신은 교회에 다니면서도 대형교회 목사들이 똥 싸고 똥 던지는 걸 보면, 객관적인 시각에서 비판한다. 자신과 관련한 이슈라 하더라도 옮고그름을 따지는 사람이 되어야지! 하고 스스로 되뇌듯, 진보를 표방하는 사람들은 정치적 올바름(PC)를 공개적으로 추구한다.


그들의 가면을 벗긴 건 겨우,

원피스다.



사건은 간단하다. 이렇다 저렇다 설명할 것도 없는 게, 그냥 여성 국회의원이 원피스를 입은 것 뿐이다. 정의당과 관련한 일이라면 하던 일 내려놓고 달려드는 민주당 지지자들이 평소 점잖게 끼고 있던 깨시민(깨어있는 시민들의 조직적 힘)의 가면을 벗어던지고 꼰대로서의 본색을 드러내고 있다.


국회의원으로서 정장을 입는 게 의무이자, 국민에 대한 예의이자, 마치 인격적 완성을 보여주는 척도인 것처럼, 소리 높여 외치고 있다. 과거 유시민이 면바지를 입었다고 국회에서 쫓겨났을 때, 그들은 세상 관용 넘치는 진보적 지식인으로서 똘레랑스 어쩌구 침 튀기며 유시민을 변호했을지 모른다. 지금은 무엇이 변한 걸까.


미래통합당은 늘 하던데로 민주당과 반대의 목소리를 낸다. 옷을 가지고 왈가왈부하지 말라는 상식적인 의견을 낸다. 이런 뻔뻔함도 좋은 정치인의 자질일 것이다.


정의당에서도 여러 목소리가 있지만, 비판이 적지 않다. 대리 시험과 대리 운전은 용서해도, 대리 게임만은 용서하지 않겠다는 단호한 태도의 사람들은 이미 탈당을 시작했다. 박원순 사건의 피해자를 옹호하면서 이미 미운털이 단단히 박힌 것 같다.


하지만 정작 당사자는 별로 개의치 않는다. 원피스를 입기 전부터 아침밥 먹듯이 먹어오던 욕이었기 때문이다.


◇ 김현정> 그 빨간 원피스가 뜻밖의 논란인 건지 아니면 예상을 하셨던 건지 궁금해요.
◆ 류호정> 이렇게까지 크게 논란이 될 줄은 예상하지 못했어요. 원래 복장에 대한 지적은 종종 있어 왔기 때문에. 그런데 이렇게까지 커질 줄은 몰랐죠. 사실 제가 청바지도 입고 반바지도 입었었고. 물론 정장도 입었었고 여러 복장들을 입고 다녔었거든요. 그런데 본회의 마지막 날 복장이 본회의 끝난 다음 날 논란이 되어서 저도 조금 놀랐습니다.
◇ 김현정> 어느 정도 예상을 하긴 했지만 이 정도까지 커질 줄은 몰랐다, 그 말씀이세요?
◆ 류호정> 아니요, 제가 정장을 입을 때는 네까짓 게 무슨 정장이야, 이런 말들부터 해서 항상 어떤 성희롱성 발언이라든지 혐오발언이 있어 왔기 때문에. 무슨 옷을 입어도 있겠지, 이런 생각은 하고 다녔어요.
◇ 김현정> 정장을 입어도 말이 있었어요?
◆ 류호정> 네, 항상 언제나 있었습니다. 여성청년 정치인에 대한 복장 지적은 언제나 있었습니다.
◆ 용혜인>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었다.
◇ 김현정> 너한테 맞지 않는 옷인데 왜 입었냐, 이런 얘기부터 시작해서 뭘 입어도 있었다. 이번에는 유독 더 컸다. 이 빨간 원피스에 대해서는.
◆ 류호정> 그렇죠.
 _노컷뉴스 「류호정 "빨간 원피스 뭐가 문제? 계속 입겠다"」 2020-08-06 기사


여성 의원이 원피스를 입으면 원피스를 입었다고 욕을 하고, 정장을 입으면 정장을 입었다고 뭐라고 한다면, 옷을 입지 말라는 걸까. 여성 주제에 국회의원이 되었다는 사실이 꼰대들의 심기를 건드린 게 분명하다.


정의당


정의당은 원래 욕을 많이 먹는 위치에 있다. 10퍼센트의 지지율로 신나게 좌회전을 외치니, 운전석에는 손도 못 대고 혼쭐이 난다. 뉴스에 등장하면 보통 욕 먹을 타이밍이라고 보면 된다.


존재 이유


이런 부정적인 반응은, 역설적으로 정의당의 존재 이유를 드러낸다. 정의당은 당당하게 욕을 먹는 위치에 서야 한다. 사람들은 단순한 걸 좋아한다. 선/악, 좌/우, 민주/보수. 여기서 벗어난 건 머리 아프게 굳이 생각하지 않는다.


뜬금없이


정의당은 그 와중에 뜬금없이 등장해서 욕 먹을 짓을 해야 한다.


다들 정장을 입고 부동산 3법 찬반으로 나뉘어 가열차게 싸울 때, 시원하게 원피스를 입어야 한다. 심상정이니, 김희서니, 김종대니 성별 가리지 않고 하루 다함께 원피스를 입는 퍼포먼스라도 벌어야 한다, 뜬금없이.


박원순의 타계로 지지자들이 추모를 하고 있을 때,  보수당 지지자들이 반대의 의미로 청와대 국민청원을 하고 있을 때, 정의당 국회의원은 피해자를 이야기해야 한다. 최소한의 인간적 도리조차 지키지 않는 사람으로 비난받더라도 해야 한다.


차별금지법이 발의된 후, 보수개신교계에서 반대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표를 의식하며 찬반을 공개적으로 표시하기 어려울 때, 정의당은 국회 앞에서 동성 키스 퍼포먼스라도 벌여야 한다, 뜬금없이.


소수의 수능 고득점자에게만 독점되었던 의사의 정원을 이번에 늘리느냐 마느냐가 논란이다. 사람들이 달려들어 찬반을 이야기할 때, 정의당은 옆에서 치고 들어가야 한다. 의사들이 집단 파업을 강행할 때, 회계사 정원을 늘려야 한다. 회계사 정원 문제로 시끄러워지면 세무사를 더 뽑아야 한다. 그리고 세무사 문제에 정신이 팔려 있을 때 국회의원 수를 늘리자는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존재 이유


그게 위에서 말했듯이 정의당의 존재 이유다. 세상이 둘로 나뉘어서 힘을 겨루고 소수를 소외시킬 때, 분위기를 흐리고, 원피스를 입고, 정신을 혼란케 해서, 다양한 논의의 가능성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아내에 의하면, 원피스가 좋은 이유는 바로 코디가 쉽다는 것이었습니다. 일단 많은 옷이 필요하지 않다 했습니다. 원피스 하나만 예쁜 걸로 사면 맨다리에 그것만 입으면 된다는 겁니다. 웬만해선 촌스럽다는 말을 듣지 않는다 하네요. 심지어 꽃무늬 원피스라도 '원래 이런 패턴이구나' 하고 말아버린답니다(꽃무늬인데도 말이죠). 게다가 원피스는 어쩐지 비싸 보이지 않습니까. 그러니 비싼 돈까지 주고 산 건데 촌스럽다는 말을 하지 않는답니다. 꽃무늬 바지는 아무리 잘 입어도 촌스러워 보일 수 있는데 말이죠.
 _최민석 「고민과 소설가」


고초


나는 여자친구와 첫 데이트 때 빨간 츄리닝을 입고 나가는, 강단 있는 퍼포먼스를 진행한 바 있다. 그로 인해 오랜기간 류호정 의원 못지않은 고초를 치렀다. 지금도 누가, 두 분 어떻게 만나시게 된 거예요? 하고 누르면 자판기처럼 나오는 하소연이다. 류호정 의원에게도 훗날 재미있게 이야기할 수 있는 에피소드가 된다면 좋겠다.


완판


참고로 해당 원피스는 완판되었다고 한다. 류호정 의원에게 조언을 하자면, 전국민이 김정은 심장만큼 류호정 패션에 관심을 가지고 있으니 당분간 유니클로는 피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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