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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태원댄싱머신 Aug 18. 2020

따뜻한 보수

 _우치다 타츠루 「어른 없는 사회」

일본책을 읽을 때면 항상 느낀다. 독특하다. 결이 다르다. 이건 일본만의 독특한 양상일 수도 있고, 단순히 외국이기 때문에 다른 것일 수도 있다.



저자의 글은 더욱 독특하다. 형식적인 측면에서는 좋은 글 같지 않다. 밑줄을 치는데. 깔끔하게 떨어지지 않는다. 비슷한 문장이 반복되기도 하고, 애매하게 끝을 맺기도 한다. 그래도 내용이 워낙 참신하니 감안하고 읽는다.


나는 한국사회에서 자랐기 때문에, 어떤 생각을 하더라도 한국 사회의 담론 지형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다른 사람들을 봐도 마찬가지다. 진보와 보수가 나뉘고, 페미니즘, 환경론자, 동물권보호론자, 통일운동, 반신자유주의 등등 다들 정해진 선 안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그래서 책을 한 번 읽어보면, 아.. 저자는 이러한 사상을 주장하는군... 하며 페미니즘 서랍에 쏘옥 집어넣고, 또 다른 책을 읽으면, 아.. 이 책은 신비주의 자기계발서군 하면서 나름의 분류체계 서랍에 쏘옥 집어넣는다.


저자의 책은, 앞서 말했듯이 독특하다. 그래서 어느 서랍에 넣어야 할지 감을 잡을 수가 없다. 저자는 스스로 보수라 밝힌다. 주로 보수를 비판하는 보수다. 내가 부정적으로 보는 꼰대들과 또 다른 형태의 꼰대다. 저자는 일종의 공동체주의자다. 스스로 표현하기로는 사회수선론자라고 한다.


사회수선론자


저는 어떤 특정한 입장의 오피니언 리더는 아닙니다. 특정 사상이나 원리의 기수라고 할 수도 없습니다. 오히려 '보수' 쪽이어서, '지금 있는 제도나 문물을 가능한 한 부수지 말고 잘 사용해 보자'는 것이 제 입장입니다. 쓸 수 있는 것은 쓰자, 고장 난 것은 가능한 한 수리해서 계속 쓰자, 이미 어떻게 해도 안 되는 것이라면 어쩔 수 없으니 그 부분만 새 것으로 교체하자, 말하자면 '동제 자전거 가게 아저씨' 같은 사회개혁론자입니다. ... 그보다는 '사회수선'이나 '사회보수'라 하는 편이 적절할지 모르겠습니다.


페미니즘과 개인주의를 공격하기도 한다. 이때 내 반응이 생소하다. 내 입장이 공격받는 느낌을 받으면 본능적으로 방어적이 되고, 화가 발끝에서부터 올라온다. 하지만, 이 수선론자 아저씨의 비판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들었다. 심지어 약간 설득되었다. 조금은 저자의 공동체주의에 경도되었다.


페미니즘


남녀의 고용 기회를 균등하게 하는 것도 구인 수는 그대로인데 구직자 수는 두배가 되는 셈이어서, 고용 측면에서 보면 고용 조건을 평가절하 할 수 있게 됩니다. 그래서 재계가 법 제정에 그렇게 열심인 것입니다. 비즈니스 하는 사람이 사회정의 실현을 위해 법 제정을 서두르는 일은 없습니다. 그런 면에서 원하든 원하지 않든 페미니즘과 자본주의는 궁합이 잘 맞았습니다. 인간이라면 '남자나 여자나 누구나 권력을 갖고 싶어 하고 돈을 원한다'는 논리로, 부권제 이데올로기와 모성애 이데올로기를 무장해제시켜 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연히 서점에서 만난 '곤란한 결혼'이 너무 좋아서 나름 좋아하는 작가 리스트에 넣어놓은 우치다 타츠루다. 위 책이 결혼 이야기가 주였다면, 이번에는 제목대로 일본 사회에 대한 이야기다. 여기저기 써온 칼럼을 모은 책이다.



공동체


전통적인 혈연공동체와 지연공동체가 붕괴한 것은 일본이 풍요롭고 안전한 사회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누구에게도 의지하지 않고 혼자서라도 살 수 있게 된 것이죠.


개인주의를 이야기하는 책만큼 공동체주의를 말하는 책들이 많다. 이책은 후자다.


친척과 친구들, 이웃들과의 네트워크는 자신에게 '만약의 일'이 있을 때 도움을 청하는 대가로 상대방에게 '만약의 일'이 있을 때 돕겠다는 상호부조적인 계약입니다. 쉽게 말하면 서로에게 폐를 끼치기 위한 시스템인 셈입니다. 인간이란 존재는 서로 폐를 끼치는 존재라는 인간 이해가 그 기본에 깔려 있습니다.


개인주의가 답이라고 생각했었다. 이게 틀렸다는 건 아니지만, 아주 예외적인 일이라는 저자의 주장에 설득되었다. 평화롭고 안전한 시대기 때문에 혼자서도 잘 먹고 잘 살 수 있는 것이다. 사회가 불안해지거나 위험해진다면 개인의 삶은 너무나 쉽게 무너진다.


역사적 상황

어느 시대가 좋다 나쁘다 한마디로 말할 수는 없겠지요. 개인이 모래알처럼 원자화되고 친족과 지역사회가 붕괴한 것은 그만큼 이 사회가 풍요롭고 안전해서 혼자서도 살 수 있게 된 대가이니까요. 어쨌든 풍요롭고 안전한 사회는 그 자체로도 하나의 성과라고 할 수 있겠죠. 그렇지만 지금 다시 우리 사회는 가난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자기 이익만 생각하고 살 수 없게 되었습니다. 세상이 예외적으로 풍요롭고 안전해서 인간이 이기적으로 변하는 것과 풍요도 안전도 사라져서 사람들이 서로 돕는 쪽으로 가는 것 중에 어느 쪽이 더 좋다고 잘라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때그때의 역사적 상황에서 어떻게든 잘 살아 보고자 애쓰는 것으로 이해하면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위와 같이 관용적인 척도 하지만, 결국엔 공동체주의를 이야기한다. 과거의 대가족은 없어지겠지만, 그에 대한 대안이 여기저기서 나타나고 있다.


확대가족


유사가족이나 확대가족에 대한 이론적인 뒷받침은 아직 누구도 하지 않고, 공동주거의 관리방식이나 운영방식도 아직 이렇다 하게 공유되어 있지 않습니다만, 여기저기서 나름의 꾸준한 실천들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사회학자 우에노 치즈코 씨가 제창한 '홀로 즐기는 노후'는 돈 있고 고학력에, 취미생활이 가능한 사람들만의 '강자 연합' 커뮤니티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돈도 없고 힘도 없는 사람들이 '약자 연합'을 구성한다는 점에서 새로운 경향을 보이고 있다고 여겨집니다. 누가 깃발을 흔들고 있는 것도 아닌데, 전국 각지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움직임이 시작되고 있습니다. 이 움직임이 핵가족의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듣고 보니 맞는 말이다. 혼자 잘 사는 삶을 생각했으나, 이는 내가 강자일 때만 가능한 것이다. 개인주의자로 사는 것도 좋은 일이지만, 능력이 보장되어 있지 않다면 불가능하다.



★★★★ 잔인한 극우가 아닌 따뜻한 보수의 시각으로 일본을 바라보는 경험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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