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T에서 전화가 왔다. 가끔 온다. 광고였다. 가족들도 SK를 안쓴다. (=가족할인 불가) 인터넷도 안하고 집에 TV도 없다. (=인터넷연계할인 불가) 완강히 저항하니 상담사도 당황한 것 같았다. 마음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누다가, 내가 지금 쓰고 있는 요금제가 5만원이라는 설명을 들었다. 분명 25% 약정 할인을 받고 있었는데, 어떻게 된거지?
25% 약정 할인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이었다. 단말기를 구입할 때 싸인한 2년간의 노예계약이 끝나면 자유의 몸이 된다. 그러면 25% 요금할인 계약을 맺을 수 있다. 이를 약정 할인이라고 부른다.
정부 정책에 적극적으로 호응하여, 나도 25% 약정할인을 받고 있었다. 그런데 요금이 5만원이라니.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보니, 예전에 신청한 약정 할인이 끝나서 다시 5만원을 전부 내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것도 1년 동안이나. 끝나면 다시 신청해야 하는 것이고, 만약 잊어먹고 신청을 안 하면 할인도 없다.
내 핸드폰은 꽤 오래 됐다. 당연히 25% 약정 할인도 꽤 오래전에 신청했었다. 팬텍앤큐리텔, 스카이라는 핸드폰 제조사를 기억하는지... 지금은 망했다. 고장 나면, 고칠 수나 있을지 모르겠다.
다시 상담하던 이야기로 돌아오자면, 속에서 불이 일었다. 원래 분노는 검찰이나 언론이 분탕질을 하거나 사법 농단이 벌어질 때는 잠자코 있다가도, 통신요금을 만원이라도 더 냈다고 하면, 움직이기 마련이다.
신청
방금 통화한 상담사는 다른 부서여서, 25% 할인 약정을 다시 신청하려면 114로 전화하라고 설명했다. 한숨을 내쉬고, 전화를 다시 걸었다. 상담사는 수화기 너머에서 친절한 목소리로 응대했다. 속에서는 천불이 났지만, 참고 이야기했다. 25% 할인 약정이 이미 1년 전에 끝났고, 계속 돈을 더 내고 있었다는 간단한 이야기를, 전태일처럼 일어나려는 분노를 꾹꾹 눌러가며 설명했다. 상담사는 약정을 다시 등록해주었고, 더불어 내가 받을 수 있는, 그렇지만 안 받고 있던 다른 혜택도 알려주었다. 친절한 말투로 차근차근 설명을 듣다 보니, 금방이라도 분신 시도할 것 같았던 분노는 어느새 사라졌다. 정말 대한민국 상담사의 감정노동은 엄청나다. 나 같은 진상 고객을 하루에도 몇 번이나 상대해야 하는 것일까.
통신사는 이렇게 꼼수로 야금야금 수익을 올리고, 분노는 친절한 상담사들이 감당해야 하다니. 이렇게 생각하니 약간 씁쓸해졌다.
희망카드사는 고개 상담 센터의 운영을 다수의 콜센터 아웃소싱 전문 업체에 위탁하고 있다. 단일한 아웃소싱 업체와 계약 관계를 맺지 않고 다수의 아웃소싱 업체들과 계약을 맺음으로써, 희망카드사는 업체 간 실적 경쟁을 유도하여 저비용으로 높은 콜 실적과 높은 서비스 품질 지수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희망카드사는 아웃소싱 업체들의 실적 평가를 통해 매년 도급비를 재산정하고, 아웃소싱의 연장 계약 여부를 결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아웃소싱 업체들 간의 실적 경쟁은 불가피하다. 이러한 아웃소싱 업체들 간의 경쟁 체제는, 콜센터 상담원의 노동강도 강화로 이어진다. "할당된 콜 수를 채우려면 화장실도 못 간다"는 말은 상담원들 사이에서 공공연한 사실이다. 매일 처리해야 하는 목표 콜 수가 정해져 상담원들에게 전달되고, 관리자는 상담원들의 실시간 콜 처리 수를 수시로 사내 메신저를 통해 전달함으로써 심리적 압박을 가한다. 그리고 달성해야 하는 영업 실적 또한 상담원들에게 압박의 기제가 된다. 콜 실적이나 영업 실적을 달성하지 못하면 소속 팀 팀장(슈퍼바이저)으로부터 인격적 모독을 당하는 일도 잦다. _김현아 「감정노동, 그 이름의 함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