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검절약 하는 사람을 가끔 본다. 가끔 본다는 건, 일상적인 모습은 아니라는 거다. 이제 과소비는 기본값이 되었다.
약간의 과소비
방금 스마트스토어를 돌아다니다 만세 선인장을 하나 샀다. 나를 향해 팔을 흔드는 모습이 너무 귀엽고 사랑스러워서, 사지 않을 수 없었다. 집은 책으로 가득 차있고, 선인장을 놓을 공간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지만, 그럴 공간이 있다면 발을 좀 더 쭈욱 피고 잘 수 있겠지만, 그런데도 샀다.
이 정도는 사도 되잖아?
나를 위해서, 고생한 나를 위로하려고, 우리는 그럴듯한 핑계를 대며 모두 적당한 과소비를 한다. 재미있는 건 다들 합리적으로 소비한다고 스스로 생각한다는 점이다. 그렇게 생각할 수 있는 이유는, 우리 모두가 약간의 과소비를 하기 때문이다.
매일 가는 카페, 이따금 사는 옷, 오랜만에 떠나는 여행, 아이폰과 자동차. 우리에게는 자연스럽다. 그런데 과거에도 이런 소비를 하던 시대가 있었나?
내가 보기에, 이유는 3가지다.
1. 남들도 이 정도는 한다.
이건 어쩔 수 없다. 우리가 생각하는 삶의 표준은 남들이다. 위스키를 마시는 모습이 미디어에 등장하면, 내 주위 사람들도 하나둘 위스키를 마시기 시작한다. 위스키를 마시는 트렌드가 미디어에 소개된다. 그걸 본 사람들은 위스키가 트렌드라고 하고, 안 본 사람들은 위스키가 내 취향이라고 한다. 우리 집에도 마트 위스키, 공항 면세점에서 사 온 위스키가 쌓여있다.
남들도 다 이 정도는 하지,
라고 생각한다면 거기서 벗어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국회의원이 원피스를 입는 것만큼 어려워진다.
2. 다른 낭비는 하지 않는다.
사람의 생김새가 다른 것처럼, 취향도 각양각색이다. 소비하는 분야도 다양하다. 누구는 술 마시고 사람들과 놀고, 누구는 여행을 가고, 누구는 운동을 하고, 누구는 화장품을 산다. 전부 다 돈이 드는 일이다. 위에서 열거한 모든 소비를 빠짐없이 하기에는 시간이 부족하고 열정이 부족하다. 그래서 내가 안 하는 소비가 좋은 핑계가 되어준다.
나는 담배는 안 피우잖아~
나는 옷 사는 데는 진짜 돈 안 써~
나는 평소에는 절약해서 전부 여행 가는데 써버린구~
3. 나는 나를 사랑한다.
자본주의는 심리학을 사랑한다. 힐링 책이나 심리학 책은 물론이고, 영화나 TV에서도 말한다. 진짜 나를 찾으라고. 마치 절약하는 나는 진짜 내가 아닌 듯이, 나를 찾는 데는 돈이 들어간다. 적당한 돈을 들여서 나를 위로하지 않으면 자존감도 자신감도 나오지 않는다. 이제 가끔 하는 사치는 트렌드가 되었다.
과하지 않은 과소비
그렇게 우리는 가처분 소득을 약간 넘어서 과소비한다. 이게 무서운 이유는 과하지 않기 때문이다. 바야흐로 과하지 않은 과소비의 시대다.
이처럼 '분수를 모르는 소비자'의 행동양식이 사회적으로 요청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정도 나이의 남자라면 이 정도의 소비생활을 하는 것이 표준이라는 모델을 미디어가 광고를 통해 지속적으로 내보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분명히 광고대행사가 만들어 낸 환상이지만, 그런 식의 표준 소비생활은 조금만 무리하면 어떻게든 나도 해 볼 수 있겠다는 수준으로 제시됩니다.
자신의 가처분 소득과 아주 동떨어진 경우에는 욕망이 생기지 않습니다. 우리는 궁전에서 살고 싶다거나 전용 제트기로 출퇴근하고 싶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그런 모델을 제시해도 욕망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우리 욕망을 자극하는 것은 항상 '조금만 무리하면 손에 닿을 것 같은 것'들입니다. 그래서 무심코 한 발을 내딛게 됩니다.
_우치다 타츠루 「어른 없는 사회」
우치다 타츠루의 말대로 무심코 한 발을 내딛게 된다. 한 발 정도는 얼마 안 하니까. 아주 비싼 건 아니니까.
원래 퇴근하면 스타벅스에 가야 하는데, 지금 코로나 때문에 과소비를 못하고 있으니 너무 답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