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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태원댄싱머신 Sep 22. 2020

짜장면이냐 짬뽕이냐

우리는 살면서 많은 판단을 하고 많은 결정을 한다. 작게는 짜장면 짬뽕에서 시작해서, 문과 이과, 전공은 뭐로 할지, 어떤 기업에 입사할지, 이직할지 말지... 지금 생각해보면 나름 중요한 결정을 해왔다. 상황과 조건이 주어지면, 그 안에서 머리를 싸매며 고민을 하고 동전을 던지며 승부를 거는 것이다.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주어진 조건 내에서의 행동이다. 우리가 처한 상황과 조건 자체에 대한 판단, 그리고 결정은 그 너머의 일이다.

짜장면과 짬뽕을 앞에 두고, 육체의 한계와 배고픔 자체에 대해 논하는 건 쉽지 않다. 문과로 갈거냐, 이과로 갈거냐의 선택 이전에, 이러한 문이과 교육 시스템 자체에 대한 평가를 하는 일은 고등학생에게 흔치 않은 일이다.

삶도 마찬가지다. 살아가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런데 삶은 살만한 것인가?

세상은 지옥이며, 여기에 새로운 생명을 던진다는 것은 곧 태어날 누군가에게 고통을 부여한다는 의미와도 같다. 사는 것이 고통스럽다는 전제를 인정하는 한, 그것은 너무도 논리적인 결론으로 보이기 때문에. 사실 어쩌면 우리가 인생에서 할 수 있는 유일한 진정한 판단과 선택은 아이를 낳을 것인가 말 것인가의 결정뿐인지도 모른다.
 _김영민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


김영민에 의하면, 우리는 아이를 낳을까 고민하는 순간, 삶 자체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된다. 삶은 고통인가. 그렇다면 다른 생명에게 고통을 선물할 가치가 있는 것일까. 나는 어떻게 살고 있나. 이러한 고민을 마치고 나면, 우리는 아이를 초대할 준비가 된다.

물론 만반의 준비 없이 갑작스럽게 찾아오는 경우도 많기는 하지만 말이다. 그놈의 술 때문에!!

김영민이 출산을 앞두고 (본인의 출산은 아니다.) 맞이하게 된 중대한 고민을, 아이 없이도 심각하게 했던 철학자가 있다.

참으로 진지한 철학적 문제는 오직 하나뿐이다. 그것은 자살이다. 인생이라는 것이 경험할 만한 가치가 있느냐 없느냐를 판단하는 것이야말로 철학의 본질적인 물음에 대한 답이다.
 _알베르 카뮈 「시지프 신화」


위와 같은 장엄한 첫 문장으로 시작한 철학 에세이 「시지프 신화」는 삶에 대한 고민과 나름의 해답으로 가득 차 있다. 결국 알베르 카뮈는 살아가기로, 살아서 고집스럽게 버티기로 한다. 우리도 이러한 고민을 거치면 삶을 살아갈 준비가 된다.

물론 세상에 치이다 보면, 그냥 살아지는 나를 발견하기도 한다. 가끔 알베르 카뮈의 중대한 고민이 찾아오기도 하지만, 술이 깨고 나면 숙취만 남아있다.

김영민 보다 알베르 카뮈 보다, 더 먼저 삶에 대해 판단하고 결정할 수도 있을까. 인간이 아니라면 가능하다. 아쿠타가와 류노스케는 '갓파'라는 요괴를 상상하며 삶에 대한 판단을 앞당겼다.

갓파도 아이를 낳을 때는 우리 인간과 마찬가지입니다. 역시 의사나 산파의 도움을 빌려서 해산을 하지요. 그렇지만 해산을 하기 전, 아버지는 전화라도 걸듯이 어머니의 생식기에 입을 대고, '너는 이 세상에 태어날지 말지 잘 생각해보고 대답을 해라' 하고 큰 소리로 묻는 것입니다. 백도 역시 무릎을 꿇고 몇 번이고 되풀이해서 이렇게 물었습니다. 그러고는 테이블 위에 있던 소독용 물약으로 양치질을 했습니다. 그러자 부인의 뱃속에 있는 아이는 다소 주위에 신경을 쓰듯 하며 작은 소리로 이렇게 대답을 했어요. '나는 태어나고 싶지 않아요. 무엇보다도 아버지한테서 정신병이 유전되는 것만 해도 문제구요. 게다가 갓파라는 존재를 나쁘다고 믿고 있으니까요.' 백은 이 대답을 들었을 때, 부끄러운 듯이 머리를 긁고 있었어요.
 _아쿠타가와 류노스케 「갓파」


재미있는 상상이다. 가끔 소설은 술 한잔 없이도 우리를 삶 너머로 데려다 준다.

만약 우리가 '갓파'라면, 우리는 태어나기로 결정할 수 있을까. 장렬하게 지옥, 아니 삶으로 뛰어들 수 있을까. 태어나기 전에 선택할 기회는 이미 놓쳤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삶을 계속 살아갈 것인가. '알베르 카뮈'처럼 고집스럽게 반항하고 버틸 것인가. 우리의 삶은 관성대로 살아간다고 치자. 나는 잘 버티고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이 삶을 다음 세대에도 물려줄 수 있을까. 그럴만한 삶인가.

짜장면과 짬뽕 앞에서도 쉽사리 결정 못하는 내가 무슨 쓰잘데 없는 고민인가... 오늘은 짜장면으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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