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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태원댄싱머신 Sep 06. 2020

결론은 결혼

 _제인 오스틴 「오만과 편견」

오만과 편견을 읽었다. 역시나 고전이었다. 고전은 재미없다. 나름 대중적이고 통속적인 로맨스 소설인 오만과 편견도 이렇게 재미가 없다니. 나는 현대 소설만 좋아한다. 근대의 글을 제대로 즐기려면 근대의 눈으로 읽어야 하고, 중세의 텍스트에 빠져들려면 중세의 안경을 끼어야 한다. 이렇게 고전에 감정 이입을 못하는 걸 보면, 나는 다른 상황을 상정해서 감정 이입하는 것 자체를 어려워하는 게 분명하다.


내용은 즉 제목과 같다. 오만하지만 속 깊은 남자와 남자를 나쁘게 봤던 아름다운 여자가 만나는 과정을 그렸다. 오해가 하나둘 풀리고 둘은 결혼을 하며 소설은 마무리된다.




가족은 딸을 짐으로 여긴다는 인상을 받았다. 어떻게든 재력 있는 가문에 시집을 보내려고 노력하는 상황이다. 그리고 이 분위기에서 주인공은 낭만적인 사랑을 꿈꾼다. 이런 소설이 대중적인 사랑을 받았다는 점에서, 우리가 낭만적 사랑을 꿈꾸는 시대에 살고 있구나 하는 걸 새삼 느끼게 해 준다.


외모


낭만적 사랑을 이야기하는 순간 눈치챘겠지만, 외모가 너무 중요한 시대를 배경으로 한다. 우리도 그 시대를 살고 있다. 등장인물은 얼마나 외모가 아름다운지를 평가받고, 이는 결혼이라는 관문을 통과하기 위한 열쇠가 된다.


너는 영리하니까, 충고를 들었다고 홧김에 고집을 피우면서 연애를 계속하거나 하지는 않겠지. 그러리라 믿고 숨김없이 이야기하겠어. 진심으로 말하는데, 네가 좀 더 조심했으면 좋겠어. 재산이 없어서 고생을 하게 될 게 뻔한 그런 사랑에 빠져서는 안 된다. 그분의 마음을 끌려고 해서도 안 된다. 그렇다고 지금 내가 그분에 대한 헌담을 하고 있는 게 아니란다. 그분은 아주 재미있는 분이란다. 그분이 예정된 대로 재산을 받았다면 너에게 그렇게 어울리는 분도 없었을 거야.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으니 공상에 빠져서는 안 된단다.



콜린스


재미있는 인물이 등장한다. 입만 열면 자신의 지위를 과시하는 남자다. 이러한 소설에 빠짐없이 등장하는 밉상 캐릭터다. 주인공에게 몇 번이나 청혼을 하고, 거절당하자 주인공의 친구와 결혼한다. 미운 모습도 너무 일관성이 있어서 오히려 귀엽게 느껴진다.


당신이 내 청을 거절하는 것은 그저 말뿐이라는 사실을 믿게 해주십시오. 내가 그렇게 믿는 이유를 간단하게 말씀드리자면, 내 청혼은 당신이 받아들이기에 부족함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또 내가 말씀드린 가정환경도 그다지 나쁘지만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내 지위나 드버그 댁과의 관계, 친척관계에 있는 이 댁과의 인연은 내게 아주 유리한 조건입니다. 그리고 당신은 틀림없이 여러 가지 매력을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앞으로도 청혼 받을 수 있을 거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는 점을 깊이 생각해주시기 바랍니다. 불행하게도 당신의 지참금은 아주 적을 테니 그 때문에 당신의 사랑스러움이나 상냥한 성격도 아무런 가치 없는 것이 되어 버리고 말지도 모르니까요. 그렇기 때문에 당신이 내 청혼을 진심으로 거절하고 있는 거라고는 생각할 수 없습니다. 당신은 고귀한 아가씨들이 곧잘 쓰곤 하는 방법으로 나를 괴롭혀서 내 사랑을 더욱 깊어지게 만들려고 하는 거라고 저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결혼


오로지 결혼을 향해 달려가는 등장인물들은 결국 결혼을 통해서 (작가와 독자에게) 평가받는다. 착하고 현명한 제인과 똑똑하고 재치 있는 리지는, 마치 상을 받는 것처럼, 부자 남편을 만나는 해피엔딩을 맞는다. 친구의 남자를 빼앗은 루카스와 사치를 부리는 리디아는, 마치 벌을 받는 것처럼, 이상한 남편을 받게 된다.


그녀는 남자나 부부생활이라는 것은 그다지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고 오로지 결혼만이 언제나 그녀의 목적이었다. 교육을 많이 받았지만 재산은 갖고 있지 못한 젊은 여자에게 있어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으며 먹고살기 위한 유일한 길은 결혼밖에 없었다. 행복을 줄 수 있을지 없을지는 확실하지 않았지만 가난으로부터 가장 기분 좋게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 바로 결혼이었다. 그녀는 바로 지금 그것을 얻은 것이다.



출판사마다 번역이 많이 다른데, 나는 동해출판 버전으로 읽었다. 다른 이유는 없고, 그냥 양장본이라는 이유였다. 스무 명이 모여서 같은 책으로 독서모임을 했다. 같은 문장을 어떻게 번역했는지 비교해봤다.  좋아하는 번역도 취향을 타는지, 하나로 몰리지 않고 마음에 드는 출판사가 나뉘었다.


★★★★★ 과연 고전은 고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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