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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태원댄싱머신 Sep 04. 2020

구덩이를 파고 있다

 _편혜영 「홀」

공포는 무지에서 나온다. 상대가 누구지 모르는 상황에서 공포영화는 시작되고, 상대가 밝혀지면서 공포영화는 막을 내린다.



소설 <홀>은 교통사고를 당해서 몸을 움직이지 못 하는 남자가 주인공이다. 아내는 교통사고에서 살아나오지 못했다. 장모님이 지금 집에서 상주하면서 남자를 돌보고 있다. 그런데 이상하다. 남자를 괴롭히는 것인지 돌보는 것인지, 살리고 싶은 것인지 죽이고 싶은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장모는 정원을 파기 시작한다. 커다란 구덩이를 만들고 있다.


사고 전에 남자는 아내와 사이가 안 좋았다. 아내는 종종 일기를 썼고, 분명 장모도 그 일기를 봤을 것이다. 이렇게 추측하며 남자는 벌벌 떨고 있다.


두근두근하며 읽었다. 재미있는 편이지만, 어디 적어놓을 만한 문장은 적다. 문장수집가로서 아쉬운 점이다.


아내에게서 어머니와 닮았다거나 어머니와 정반대의 모습을 본 것은 아니었다. 어떻게 보면 아내는 어머니와 아버지의 성격을 모두 가지고 있었다. 불안해 보이는 동시에 자신만만했다. 독선적이면서 여유로웠다. 그것이 오기에게는 신기하게 여겨졌다. 그 둘은 절대 양립 불가능할 것 같았다. 부모를 떠올릴 때면 늘 각자의 공간에 침통하게 앉아 있는 모습이 그려지는 것처럼 어머니와 아버지는 단절된 인생에 제각각 존재하는 인물들이었는데, 아내에게서 그 둘이 자연스럽게 공존했다.
장모가 쳐다보면 오기는 가만히 눈을 감고 힘이 빠진 듯 굴었다. 처음에는 억지로 그렇게 했는데, 며칠 지나자 실제로 몸이 아파왔다. 장모가 가만히 오기를 내려다보고서 있을 때가 많아졌다. 오기는 땀을 흘렸고 신음을 내뱉었다. 꾸미지 않아도 자연스레 앓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차가 앞차에 부딪히고 가드레일을 받고 아래로 굴러 떨어진다는 걸 깨닫자, 편안해졌다. 모든 것이 끝난 것 같았다. 마음이 놓였다. 안달복달하며 삶을 꾸려오던 게 조금 억울했지만 삶을 계속 유지해야 한다는 피로감이 더 압도적이었다.
깊고 어두운 구멍에 누워 있다고 해서 오기가 아내의 슬픔을 알게 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자신이 아내를 조금도 달래지 못했다는 건 알 수 있었다. 아내가 눈물을 거둔 것은 그저 그럴 때가 되어서였지, 더 이상 슬프지 않아서는 아니었다.
오기는 비로소 울었다. 아내의 슬픔 때문이 아니었다. 그저 그럴 때가 되어서였다.



★★★★★ 소설은 독후감을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르겠네. 헤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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