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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태원댄싱머신 Sep 11. 2020

다자이 오사무가 죽고 인간실격은 다시 태어났다

 _이토 준지 「인간실격」

속편이 원작 이상으로 만족스러운 경우가 있을까? 쉽지 않을 것이다. 원작을 그대로 표현하면 의미가 없고, 다르게 표현하면 그 맛을 잃어버린다. 원작의 맛은 그대로 살리면서 새로운 매력을 더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원작 팬들의 눈도 이미 원작의 수준에 맞춰져 있기 때문에, 이래도 욕 먹고 저래도 욕 먹는 게 일반적인 수순이다



다자이 오사무의 음울한 작품 「인간실격」을 이토 준지가 그렸다. 이토 준지는 이상하고 요망한 그림으로 독자를 괴롭게 하는 작가다. 단순히 죽고 죽이는 그런 잔인함은 가볍게 넘어선다. 예를 들어, 토미에라는 작품이 있다. 토미에라는 여자아이를 죽여서 술로 담궜는데, 그 술을 마신 사람들이 미쳐서 토미에를 찾아다닌다는 이야기다. 간단하게 요약했기 때문에 이상하게 들리는 건 아니다. 실제 만화를 읽어보면 더 괴로울 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단 읽으면 빠져들게 된다. 이상한 작가의 능력이다. 최근에는 고양이와의 일상툰도 그렸는데, 그것도 참 요상하다. 다음 기회에 한 번 소개하겠다.


인간실격 이야기를 하려다가 말이 길어졌다. 다시 이 책으로 돌아가자. 다자이 오사무는 분명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을 거다. 자신의 삶을 이리저리 가공해서 그 음울함, 그 괴로움, 그리고 후련함까지. 그 느낌을 텍스트로 적었다. 소설의 문체는 저자가 말하고 싶은 바를 충분히 표현했고, 많은 독자들을 열광케 했다.


이번에는 이토 준지가 인간실격을 읽고 느낀 바를 그렸다. 그래서 원작과 다르다. 하지만 그 느낌을 충분히 살렸다. 글로 표현했을 때 상상을 불러일으키는 문장이 있을 거다. 예를 들어 이런 부분이다.


그 아이의 웃는 얼굴은 정말이지 자세히 보면 볼수록 어딘지 모르게 꺼림칙하고 섬뜩한 기운이 느껴진다. 애당초 그건 웃는 얼굴이 아니다. 이 아이는 전혀 웃고 있지 않다. 그 증거로 아이는 두 주먹을 꽉 쥐고 있다. 인간은 주먹을 꽉 쥐고 웃을 수는 없는 법이다.
 _다자이 오사무 「인간실격」


이런 부분은 글로 표현하니까 우리의 상상을 자극하고 더 텍스트에 빠져들게 된다.


반대로, 글로 적었을 때는 아무 느낌이 없지만, 그림으로 표현하니까 살아나는 장면도 있다. 그걸 이토 준지가 나름의 방식으로 잘 표현했다. 책에서는 한 문장으로 슬쩍 지나가 버리는 자질구레한 부분이, 만화 인간실격에서는 풍성한 이미지로 페이지를 장식한다. 넙치, 다케이치, 약국주인에 대한 이토 준지의 표현은 만화를 보지 않았다면, 영영 떠올릴 수 없었을 거다.


반대의 경우는 어떨지 상상이 안 가지만, 나는 원작을 먼저 읽고 만화를 읽는 걸 추천한다. 원작과 이렇게 다르고, 이토 준지는 어떻게 해석했는지 확인하는 맛이 쏠쏠하다.



다자이 오사무가 죽고 70년이 드디어 지났다. 빌어먹을 지적재산권법 때문에 저자가 죽고 70년이 지나야 사람들이 예술 작품을 자유롭게 향유할 수 있게 된다.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저작권 보호의 기간은 사후 10년까지가 적당한 것 같다. 암튼) 다양한 번역이 쏟아지고, 이렇게 원작을 마구잡이로 훼손하고 창조적으로 파괴한 괴물도 탄생했다.


★★★★★ 원작을 밟고 일어선 오마주





아 그러고 보니, 둘리를 창조적으로 파괴하는 걸 넘어서 아주 작살을 낸 작품도 있다. 이것도 아주 좋아하는데, 원작자가 살아있으니 이런 게 나오는 게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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