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맛집머신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태원댄싱머신 Sep 13. 2020

리코타 막걸리

막걸리를 마시러 왔다. 첫 맛은 막걸리의 시큼함이 느껴진다. 그리고 두번째 모금부터는 치즈의 큼큼함이 나오기 시작한다.


막 친구들과 헤어지고 카페에서 책보다가 집에 가려는 길이었다. 그러다 배러댄비프를 지나갔다. 항상 독서모임이 끝나면 사람들과 오던 가게였다. 늘 바글바글한 술집이기 때문에 혼자 올 엄두는 못 냈다. 막걸리를 마신지 오래 되었는지, 오늘은 참기가 어려웠다. 주저하다 용기를 내서 들어왔다.


마침 비가 오고 있다. 하지만 비가 온다고 막걸리에 파전을 먹는 그런 뻔한 사람은 아니다. 김치전을 시켰다. 가로수길 답게 김치전 하나도 평범하지 않다. 코코넛을 넣고 버무린 김치전이다.


나는 코코넛을 좋아한다. 카레를 끓일 때 코코넛 가루를 넣고, 커피를 끓일 때도 코코넛 가루를 넣는다. 하이난에서 넉넉히 사왔다.


홀짝홀짝 마시다 보니, 김치전이 나오기 전에 이미 막걸리의 절반을 비웠다.


머리 속에서는, 사람들이 바글바글한 핫플레이스에서 혼술하는 상황이 민망하니 언능 마시고 떠나고 싶은 마음과 이렇게 용기 내서 들어왔으니 충분히 만끽하고 가고 싶은 마음이 열심히 싸우고 있었다. 막걸리가 하나둘 들어가자, 싸우다가 정든다고, 둘은 알딸딸한 친구가 되었다. 마음의 어깨동무가 찾아왔다. 에라 모르겠다.


코코넛 김치전


김치전은 그냥 보통이었다. 코코넛이 들어갔었나? 갸우뚱할 정도로 특색이 없었다. 겉만 화려하고 실제로는 평범 그 자체인, 하우스푸어, 카푸어 냄새가 물씬 풍기는 강남의 맛이었다. 여기보다 훨씬 바삭바삭하고 달짝지근한 김치전 하는데를 안다. 생각해보니 여기에서 막걸리 말고 내가 맛있다고 기억하는 메뉴가 있었나? (이 글을 적으며 다시 생각해보니, 예전에 트러플 오일 파스타가 아주 맛있었다!!) 딱히 마음에 드는 메뉴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혼자 용기낼만한 막걸리를 판다.


리코타 막걸리


처음 리코타 막걸리를 만난 날은 비가 오지 않았지만, 비가 온 것만큼 흠뻑 젖은 날이었다. 너무 놀라 가만히 있지 못하던 손가락은 덜덜 떨면서도 침착하게 마우스를 클릭해 리코타 치즈를 시켰다. 옥션에 로그인해서 검색하고 시킨다. 대용량과 소포장이 있다. 처음에는 대용량을 시켰다. 양이 많아 상할까 걱정되어서 매일 리코타 막걸리를 몇 잔씩 말아서 들이켰다. 그래도 마지막 조금 남은 아이들은 김치처럼 발효되어 버린다. 양이 적은 건 비쌌지만, 이제 양이 적은 걸로 시켜서 천천히 먹는다.


내 최애 막걸리인 장수막걸리, 나보다 장수 했으면 좋겠다고 바라는 막걸리와 섞는다. 처음 지인들을 초대해서 먹였는데, 다들 싱겁다고 했다. 나는 괜찮은데, 다들 입맛이 까다롭다. 다음에는 거기에 올리고당을 첨가했다. 올리고당이 첨가된 이후에 방문한 운좋은 지인들은 훨씬 맛있게 먹었다.


막걸리를 좋아해서 이것저것 마셔봤는데, 리코타 막걸리가 최고다. 다음에는 트러플 오일 파스타와 같이 먹어야지. 혼자라도 먹는다!! 으왕!!

매거진의 이전글 와플을 먹고 책을 덮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