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친구네 집에서 TV를 보다 「현지에서 먹힐까? 중국편」을 보았다. 아주 우연히 보게 되었다. 집에 TV도 없는 데다, 먹방이나 쿡방을 굳이 찾아보지 않는다. 그래서 이연복 요리사가 유명한 것은 알았지만, 이렇게 찾아볼 줄은 몰랐다. 칠리새우와 크림새우를 파는 편을 봤는데, 재미있는 데다 중국이 나오는 것도 반가워서 나머지도 찾아보기 시작했다. 1편부터 쭈욱 봤다. 퇴근하고 하루에 한두편씩. 보다보니 먹방은 정말 앞으로 못 보겠다, 싶었다. 퇴근하고 밥도 다 먹고 쉬면서 자기 전에 한두 편을 보는데, 짜장면 만드는 과정을 한두 시간 보는 게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달궈진 웍에 파와 생강, 양파를 넣고 살짝 볶다가, 돼지고기를 넣고 간장과 기름 두르고 웍질을 시작한다. 온도도 뜨거워졌고 기름도 충분하니 웍을 흔들면 바로 불쇼다. 살짝 익힌 후에는, 양파와 호박을 대량으로 넣고 볶는다. 이제 무거운 웍을 온힘을 다해 흔들며 볶는 시간이다. 작은 새우와 오징어 다진 것을 넣기도 한다. 그러면 재료는 다 들어갔고, 중국된장과 치킨스톡, 굴소스를 뿌린다. 주인공인 춘장 덩어리를 뭉텅이로 넣고 섞으면서 달달 볶아준다. 마지막으로 전분으로 농도를 맞춰주면 끝이다. 면을 삶아서 방금 요리한 짜장면 소스를 위에 올리면 바로 나간다.
이미 잘 시간은 지났고 잠은 오는데 재미는 있고 짜장면은 화면에만 있고, 나도 모르게 냉장고를 뒤져서 과일을 먹는다. 사과도 먹고 키위도 먹고 포도도 먹는다. 나름 부담되지 않는 과일이라고 꺼내먹은 거지만, 아침에 일어나면 속이 좋지않다. 그리고 무엇보다 과일을 먹었다고 해서 짜장면의 잔상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자꾸 춘장과 볶은 양파의 향이 어디선가 날아들어오는 것 같다.
그렇게 일주일을 봤다. 자기 전 한두 시간씩 자발적인 짜장면 고문을 당한 기분이다. 당장이라도 짜장면을 시키고 싶었지만, 냉장고에 식재료가 가득 차있어서 먹지 않으면 버려야 하니 어쩔 수 없이 찌개를 끓였다. 청국장도 해먹고, 순두부찌개도 해먹었다. 다 내가 좋아하는 요리지만, 그래서 맛있게 먹은 건 사실이지만, 여전히 춘장과 볶은 양파의 향이 어디선가 날아들어오는 듯하다.
이제 주말이다. 더 이상은 못 참겠다. 집 앞에 백종원의 짜장면가게(홍콩반점0410)가 있어서 달려갔다. 평소 먹을 때와는 달리, 이연복이 짜장을 볶는 과정을 떠올리면서 먹으니, 왠지 야채 하나하나가 더 특별하게 느껴진다. 현실은 백종원의 최적화된 프랜차이즈 매뉴얼 짜장면이지만, 맛있었다. 가격은 겨우 4500원. 동네 짜장면집보다 저렴하다. 역시 백종원은 가차없다.
「현지에서 먹힐까? 중국편」에서는 먹는 중국인들이 맛있다고 감탄하고 감동받는 리액션이 많이 나온다. 역시 한국 짜장면이 최고야 하면서, 국뽕에 젖기도 하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예전 생각이 많이 났다.
내가 중국에서 짜장면을 팔았을 때도 분명 이런 맛이었다. 중국 사람들도 눈 뒤집혀서 맛있다고 하겠지? 기대했는데, 반응은 이랬다.음식이 까맣네요? 드라마에서 볼때는 좋아보였는데 너무 달아요. 결국 잘 안 팔렸다. TV 속 화면에서는 사람들이 왜 이렇게 좋아할까. 아마 가장 큰 차이는 이연복이었을 거다. 중화요리를 40년 해온 대가의 요리였으니까. 게다가 주문이 들어오면 바로 볶았기 때문에 사실상 짜장이 아니라 간짜장이었다.
짜장과 간짜장의 차이
짜장과 간짜장은 비슷하다고 말할 수도 있고 완전 다르다고 할 수도 있다. 사실 가게마다 차이가 있다. 일반적인 형태로 말한다면, 이연복이 방송에서 하는 것처럼 웍으로 열심히 볶아서 나가면 그건 간짜장이다. 그런데 매번 이렇게 만들어서 나가는 건 어려우니 오전에 왕창 만들어 놓고 보온이 유지되는 기계에 보관한다. 주문이 들어오면 푸욱 퍼서 면 위에 올린다. 이게 짜장이다. 이 경우 아무리 맛있게 볶아놓았다 하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양파와 호박에서 물이 나와서 흥건해진다. 탱글탱글한 간짜장과 비교해서 물짜장이라 부른다. 어차피 물이 나올 테니, 처음 짜장을 만들 때부터 물을 넣고 하는 경우도 많다. 이렇게 하면 사실상 볶는 게 아니라 끓이는 게 된다. 처음부터 물짜장이 되는 것이다.
사실 내가 중국에서 짜장면만 판 것은 아니다. 당시 중국에서 핫했던 게 「별에서 온 그대」였다. 전지현이 치맥을 먹으니, 온 중국에 치맥 열풍이 분 것처럼 언론에서 떠들어댔다. 이때다, 하고 치킨도 튀겼지만, 관심을 가지는 사람은 극소수였다.
백종원의 짜장면을 먹으며 생각했다. 이연복 정도 되니까 중국에 가서 짜장면을 팔아도 되는구나. 현지에서 짜장면이 먹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연복은 먹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