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걸리를 한 잔 들이키자마자 내밀었다. 제 청첩장이에요. 결혼 소식을 들은 그는 축하한다는 말과 함께 책을 건넸다. 책은 작고 심플했다. 알고보니 그가 보여주고 싶어한 것은 청첩장이 아니라 책이었다.
생각지 못한 선물에 당황했다. 책이라니. 생각해보니, 원래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었고, 소설을 쓰기도 했다. 다름 아니고, 내가 만들었던 책에 글을 보낸 그였다. 몇 년 전에 「줄거리 없는 이야기」라는 소설집을 만드는 데, 그가 단편 소설을 하나 맡아 썼다. 순식간에 다 팔려서 (인쇄를 얼마 안 했다;;), 지금은 품절이다. 그간 만들었던 책들과 달리, 앞 면에는 제목만 적고, 뒷면에 그림을 넣었다.
그가 건넨 책은, 독립출판 답게 매우 특이했다. 일단 앞 표지에는 있어야 할 제목이 없다. 대신에 의미심장한 대화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단번에 전반적인 분위기와 무거운 주제 의식을 예상하게 하는 문구다.
왠지 이태원댄싱머신님에게는 보여주고 싶었어요.
아. 고마워요. 왠지 책을 썼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역시 저번 소설집 이후로도 계속 소설을 써왔던 거군요. 대단해요.
저도 왠지 여기 청국장과 제육볶음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청국장은 여전히 맛있었다. 일반 청국장보다 약간 달착지근한 게, 양파도 많이 넣고, 된장과 청국장을 섞어쓴 듯하다. 막걸리는 장수막걸리다. 탄산이 가득하면서 약간 달착지근한 게, 내 최애 막걸리다. 청국장에도 잘 어울린다. 그리고 제육볶음. 처음 여기에서 제육볶음 먹은 날을 잊을 수 없다. 한 젓가락 훅 집어서 입에 넣은 순간, 하늘로 붕 떠서, 달에 착륙한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런데 오늘은 도킹 실패. 고기가 별로였다. 딱딱한 부분도 있었고, 커다란 지방 덩어리도 종종 보였다. 여전히 달착지근하고 맛있기는 했지만, 기대에 비해서는 조금 아쉬웠다.
직접 인디자인으로 책을 편집해서 인쇄소에 맡겼다고 한다. 출판사도 만들고 ISBN도 받았다고 한다. 독립출판을 시작하는 일반적인 수순이 있는데, 이를 그대로 따른 듯했다. 딱 10부만 뽑았다고 하는 그에게 갓 지은 책에 대한 애정이 느껴졌다. 나도 사람들 글을 모아서 책을 만들지만, 온전히 내 글로만 책을 채워본 경험은 없다. 언젠가 하고 싶다고, 막연한 꿈만 꾸고 있다. 이걸 해낸 그가 대견하다는 생각도 들고, 부럽기도 했다.
그와 헤어지고 돌아오는 지하철에서, 절반을 읽어버렸다. 의외로 술술 읽혔다.
너무 재미있네요. 다음에 만나서 의견 들려줄게요. 바로 문자를 보냈다. 의견 들려주는 핑계로 또 사당에서 만나서 청국장, 제육볶음에 막걸리를 마실 생각을 하니 설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