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스터디는 취업을 목표로 노력하는 대학생들을 모아서 우쭈쭈도 해주고 가끔 옆구리도 찌르면서 은근슬쩍 도움을 주는 대학의 서비스다. 사실상 취업률이 대학의 질을 평가하는 평가지표가 되어버린 상황에서 취업률을 까먹고 있는 골칫덩어리들을 해결하기 위한 자구책이라고 할 수 있겠다.
당시 자기소개서와 창작욕구, 토익과 영어 회화, 면접과 쇼맨십 이야기를 지나서 학점으로 주제는 옮겨갔다. 학점을 공개해보니, 신기하게 다들 학점이 비슷했다. 남자들은 3점대 중반, 여자들은 4점대 초반이었다. 적어도 이정도는 되어야 취업에서 불리하지 않는다는 마지노선이 있었기 때문에 다들 어떻게든 재수강을 통해서라도 맞춘 것 같았다. 이렇게 학점이 성별을 기준으로 양분화가 된 까닭은 무엇일까.
고민 끝에 세운 가설은 2가지다. 일단 첫번째 가설.
1. 학점이 높은 남학생은 없다.
가능성이 없지는 않다. 나만 하더라도, 입학하고 나서 처음에는 술 먹고 노느라 연애편지 대신에 학사경고를 받지 않았나. 하지만 위 가설을 반박하는 것은 시간의 힘이다. 아무리 바보라도 4년 내내 바보일 수는 없다. 나만 하더라도, 코 훌쩍이던 시기를 지나고나니 과탑을 밥 먹듯이 하지 않았나.
그래서 두번째 가설이 조금 더 신뢰할만 하다.
2. 학점이 높은 남학생이 만약 있다면, 취업스터디에 오지 않는다.
남자로 태어나서 명문대에 왔고 학점까지 높다면, 취업스터디의 문은 쉽게 열리지 않는다. 더 많은 굴곡이 필요하다. 이건 내가 경험해 보지 않아서 확신은 못하겠지만, 그럴 듯한 가설이다. 당시 학교에는, 학점이 좋거나 공대에 다니는 남학우들은 최하 삼성이라는 이야기가 돌곤 했다.
열심히 인생을 즐기느라 취업스터디에 참여할 수 있는 자격을 획득하고, 열심히 노력해서, 나만 빼고, 대기업에 간 친구들과 함께 학교 근처 막걸리집을 찾았다. 막걸리집은, 남들이 토익 공부하고 학점 올릴 시간에 연애하고 담배피고 술 마시고 책 읽고 시위 나가는 골칫덩어리들이 저렴한 가격에 청춘을 낭비할 수 있는 공간이다. 이제 이 친구들은 더이상 낭비할 청춘이 남아있지 않은 기성세대가 되었다. 어제 일도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한 때 자신도 골칫덩어리였다는 것을, 취업스터디에 들어갈 자격을 획득했었다는 사실을, 이따금 기억했으면 좋겠다.
취업 하니 생각나는 글이 있다. 우먼카인드라는 잡지에서 읽었는데, 엄마가 딸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이다. 조금 길지만, 너무 공감이 가는 글이라 옮긴다.
학교를 졸업하고 회사라는 곳에 취직하기 위해 너도 이런저런 스펙들을 쌓겠지. 그러다 문득 깨닫게 될 거다. 최고의 스펙은 남성이라는 사실을. 나보다 공부도 못하고 불성실했던 저 남자아이들은 왜 저렇게 철컥철컥 잘 붙는지, 면접장에 가면 시험을 통과한 여성 지원자가 절반을 넘어서는데 왜 최종 합격자 명단에는 한두 명밖에 이름을 올리지 못하는 건지, 너는 몹시 의아할 것이다. 어떤 때 너는 말을 너무 대차게 잘해서 면접에서 탈락할 것이며, 어떤 때는 얌전하게 두루뭉술한 대답을 했다가 면접에서 낙방할 것이다. 어떤 때는 인상이 너무 강해 보여서 떨어지고, 어떤 때는 외모가 너무 어려 보여서 떨어지기도 한다. 차분하면 음울해 보인다며 낙방, 너무 쾌활해 보여도 푼수 같다고 탈락. 잘 납득이 되지 않을 것이다. 둘 중 하나는 합격해야 논리적으로 합당한 것 아닌가. 그러나 세상은 여성을 논리의 눈으로 보지 않는다. 면접에 합격하기 위해 너는 교묘하게 복합적인 캐릭터를 연기해야 한다. '저는 옳고 그름에 대한 분별이 명확한 사람이지만, 여러분의 뜻을 거스르는 일은 절대로 없을 것입니다.'라는 그 자체로 모순적인 태도를 그놈의 싹싹한 태도로 어필해야 하는 것이다. 분위기를 맞출 만큼 명랑하지만 눈치 없이 나대는 여자는 아니며, 업무는 똘똘하게 스스로 처리할 수 있지만 조직의 총화를 해치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라는 메시지를 온몸으로 발산해야 한다. 그것도 시험 성적이 어마어마하게 좋았을 경우에나 해당하는 얘기다. 엄마가 너를 여성으로 낳았기 때문이다. 엄마가 17년간 사회생활을 하면서 본 여성 노동자들은 거개가 매우 유능했다. 왜냐하면 그녀들은 여성임에도 불구하고 뽑지 않을 수 없었던 엄청난 여성들이기 때문이다. 열 명의 신입사원을 뽑았는데 한 명만 여성이라면 그녀는 수석 합격자다. 두 명이 여성이라면 그들이 수석과 차석이다. 회사들은 모든 직원을 전원 남성으로 뽑고 싶은 내심을 감추고, 구색 맞추기용으로 한두 자리를 여성에게 할당해왔다. _박선영 「딸아, 너는 무수리처럼 일하지 말지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