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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태원댄싱머신 Sep 21. 2020

팝콘을 먹으며 임창정을 본다

 「스카우트」

원래 영화는 잘 안 보는 편이다. 그래도 좋다좋다 사람들이 칭찬하는 경우는 가끔 찾아보기도 한다. 그게 영화 「스카우트」였다.


원래 영화를 잘 안 보는 편이었지만, 코미디 영화는 조금 더 안 보는 편이었다. 가끔 우연히 접했던 이 영화의 포스터나 줄거리는 가벼운 코미디 작품을 연상케 했다. 그래서 내가 이 영화를 볼 일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는 못했다.


개연성 없이 우연으로 점철된 작품은 막장이라 부른다. 현실을 무시하고 우연한 사건으로 모든 문제가 다 해결이 된다거나, 개인적인 노력으로 구조적인 걸림돌이 다 해결되는 초현실주의 막장은 아무래도 이입하기 어렵다. 그래서 영화는 현실에 한 발을 딛고 있어야 한다. 80년대를 배경으로 한다면, 독재를 빼고 이야기하기 어렵다. 민주화 이후의 대한민국은 신자유주의를 빼놓고 이야기하기 어려운 것처럼 말이다.


그렇다고 현실 바닥에서만 파닥인다면, 뭍 위로 던져진 물고기처럼 안타까운 다큐멘터리가 될 뿐이다. 그래서 다른 한 발은 상상에 딛고 있어야 한다. 현실에서는 일어나기 어려운 자그마한 기적이나 우연이 영화에서 펼쳐지면, 이제 팝콘을 준비할 시간인 거다.


영화 「스카우트」는 '이 영화는 광주민주화운동 직전 10일간의 이야기다.' 라는 문구로 시작한다. 단순한 코미디 영화를 기대했던 관객은 팝콘을 일단 내려놓게 한다. 하지만 얼마 안가 임창정이 등장한다. 그의 바보 같고 순수하고 찌질한 모습을 보다 보면, 어느새 콜라를 쪽쪽 빨며 팝콘을 집어먹고 있다.


제목처럼 주인공은 선동열을 스카우트 하기 위해 광주로 찾아간다. 노력과 행운으로 거의 계약 직전까지 간다. 그러다 시대의 바람을 맞게 된다. 폭력의 시대에서 개인이 할 수 있는 건 많지 않다. 부서지거나 도망치거나. 하지만 영화는 다른 한 발을 상상에 딛고 있다. 그래서 시종일관 깔깔거리면서 볼 수 있다.


스포일링을 하지 않으려 노력하다 보니, 표현이 명확하지 않은 점 양해 바란다. 한 번 볼만한 영화라고 생각해서 더욱 조심했다.



임창정


광주민주화운동이 일어나기 며칠 전 상황인데, 팝콘이 넘어가는 이유는 전부 임창정에 있다. 시종일관, 나쁜 것인지 착한 것인지 알 수 없는 어정쩡하게 현실적인 바보 연기, 즉 '임창정' 연기를 완벽하게 해낸다. 그러다가도 임창정이 갑자기 울음을 터뜨리면, 나도 모르게 팝콘을 떨군다. 그 표정을 보면, 평소에 눈물 한번 안 흘리는 나조차도, 순식간에 연인을 잃은 찌질남이 되어버린다.


박철민


이른바 감초 역할이다. 그런데 역시 우직한 건지, 멍청한 건지 알 수 없는 어정쩡한 역할을 충실히 해낸다. 안타까운 시대의 영화는 이러한 어정쩡함이 없으면 코미디 영화가 될 수 없나 보다. 임창정의 연기로, 10년 만에 한번 나올뻔했던 눈물이 박철민의 코미디로 다시 쏙 들어갔다. 원망스러울 정도였다.


엄지원


쉬운 캐릭터가 아니었다. 임창정에 대한 그리운 마음, 미운 마음, 그리고 시대와 상황에 대한 안타까움을 전부 표정으로 보여준다. 임창정에 대한 원망을 시대로 돌리고, 그 시대를 온몸으로 돌파해내려는 결연함이 그대로 전해졌다. 이러한 내공이 연기로 만들어낸 것인지, 배우 본연의 내공인지 모르겠다. 둘 중 어느 것이라 하더라도 보통 배우는 아니다.


아주 만족스럽다. 역시 사람들이 좋다고 하는 영화는 다 이유가 있었다. 다음에는 「기생충」도 봐야지.


이 영화를 고른 이유는 아래 글 때문이다. 김영민의 표현도 아주 좋다.


다시 며칠 고민한 끝에, 그 학생에게 영화 DVD 하나를 건넸다. 김현석 감독의 <스카운트>(2007). 개봉 당시 크게 흥행하지는 못했던 이 영화는 광주민주항쟁에 관련된 영화들 중 최고작이다. 컨디션이 좋을 때의 김현석 감독은, 우리 삶은 거대한 어떤 흐름 위로 무력하게 스쳐 지나가는 거품 같다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유머를 잃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_김영민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


★★★★★ 민주화운동도 임창정을 만나면 춤을 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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