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재난 영화는 비극적인 재난이 맨 마지막 부분에 위치한다. 주인공을 비롯한 선한 사람들은 파국을 막기 위해 노력한다. 박진감 넘치는 사투를 보면서 관객들은 손에 땀을 쥔다. 이 영화는 조금 다르다. 시작하자 마자 대지진이 벌어진다. 실제 중국에서 벌어진 23초간의 지진으로, 27만명이 생을 마감했다고 한다.
대지진 장면은 정말 실감난다. 중국의 그래픽 기술이 이렇게나 발전했나, 하고 감탄하게 된다. 반면 늙은 엄마 역할을 하는 배우는 누가 봐도 젊은 여자여서, 한숨이 나왔다. (감독의 부인이 여주인공이다.)
대지진이 순식간에 지나가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선택을 해야 한다. 주인공 가족은 남매 중 하나만 살릴 수 있는 상황에 처하게 되고, 어머니는 남동생을 살린다. (이거 스포일러 아니다. 영화 맨 처음 부분이니까.) 그 이후에 펼쳐지는 이야기가 영화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분명 눈물 콧물 질질 나올 수밖에 없는 서사이기는 하나 (나는 냉혈안이라 코 후비면서 봤다.) 비교적 담담하게 그린 것 같아서 좋다. 뒤로 갈수록 감정을 고조시키려고 노력하는 연기가 나오기는 하지만, 그래도 중반까지는 최대한 생략해가며 너무 무겁지 않게 이야기를 이끈다. 생략을 잘하는 감독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죽일지 살릴지, 결정하는 상황이라니. 철학적인 고민을 던져준다. 이런 순간이 고민되는 이유는 삶이 곧 선, 좋은 거고, 죽음이 곧 악, 나쁜 거라는 전제 때문이다. 그런데 죽음이 정말 나쁜 건가. 살아남은 사람이 겪을 고통을 생각해보면, 정말 삶이 좋은 선택이라고 볼 수 있을까. 사랑하는 사람이 먼저 간다면, 나는 ... 어쩌면 먼저 간 사람을 부러워할지도 모른다. 내가 먼저 가면, 힘들어할 여자친구를 위해서, 유언을 남겨야겠다. 내가 죽고 나면 같이 묻어달라고.
죽음을 두려워하는 자는 이로 인해 타자에게 굴종하고 결국 노예가 된다. 그는 죽음의 위험 대신 노예 상태를 선택한다. 그는 벌거벗은 삶에 달라붙어 떨어지려 하지 않는다. 신체적 우의에 있는 쪽이 꼭 투쟁의 승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결정적인 것은 오히려 "죽음의 능력"이다. 죽음을 향한 자유를 알지 못하는 자는 자신의 삶을 걸지 못한다. _한병철 「에로스의 종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