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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태원댄싱머신 Sep 26. 2020

여러번 곱씹으면 웃기다

 _밀란 쿤데라 「느림」

첫 번째 읽을 때는 지루했다. 아 그냥 덮을까, 고민하면서 덮밥을 먹다 결국 덮었다. 한 달이 넘게 지나서, 그래도 끝은 봐야지, 하는 마음으로 다시 펼쳤다. 앞부분은 기억이 하나도 안 났다. 사람 이름도 헷갈려서 몰입하기 어려웠다. 어찌어찌 끝을 보고, 포스트잇을 붙이기 위해서 다시 읽었다. 원래 밑줄을 치거나 포스트잇을 붙이기 위해서 책을 두세 번은 읽는다. 그런데 두 번째 읽을 때 갑자기 몰입이 되기 시작했다. 두서없이 이리저리 몰아치는 상황은 전부,


작가의 유머였다.


응? 이걸 지금 유머라고 한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과연 전체적인 구조가 머리에 들어온 후에는, 낄낄낄 웃으면서 책을 넘기고 있었다. 어렵게 유머를 하는 작가도 이상하고, 두 번 읽어서 어려움과 지루함을 참아가며 겨우 이해하고 나서 낄낄거리는 독자도 이상하다.


물론 체코와 유럽의 20세기 냉전 상황을 이해하는 서양의 지식인이라면 한 번에 이해하고 푸하하 웃으며 책을 넘길 수 있다. 하지만 번역본을 읽어야 하는 동방의 현자에게는 보리수나무 아래에서 가부좌를 틀고 앉아 두세 번 읽는 수고가 필요하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밀란 쿤데라의 책을 처음 읽은 게 아니다. 내가 항상 인생책이라 부르는 최고의 소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의 저자 아닌가. 이 책도 감동의 물결은 두 번째 읽을 때 몰려왔다. 물론 이 책이 그 정도라는 것은 아니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는 깊이 있는 내용 곳곳에 심오한 의미가 숨어있는 구조기 때문에, 숨을 참고 내려가며 의미를 캐는 해녀가 될 수밖에 없다. 반면, 이 책 「느림」은 그냥 어려워서 두 번째에 재미를 느낀 거였다.


구도도 독특하고, 주요 사건도 없다. 사건들이 맥락 없이 몰아치고, 인물들은 뜬금없이 갈등하고 논쟁한다. 뭐랄까, 저자가 상상하며 써둔 단편소설을 하나로 뭉쳐놓은 느낌이랄까? 독특하다. 이걸 매끄럽게 매만진 건 밀란 쿤데라라서 가능할 것이다.


구도가 얼마나 엉망진창이면, 저자가 종종 등장하는데, 화자도 아니고 주변 인물도 아니고 관찰자도 아니다. 저자의 상상과 소설이 이상하게 버무려져 있다.


"또 뭘 꾸미고 있죠? 소설?" 염려스러운 듯, 그녀가 묻는다.
나는 머리를 조아린다.
"종종 당신은 내게 언젠가는 단 한 마디도 진지하지 않은 그런 소설을 쓰고 싶다고 말했어요. 다신의 즐거움을 위한 그런 거대한 장난질을. 그때가 온 게 아닌지 두렵군요. 다만 당신에게 이렇게 경고하고 싶어요. 조심해요."
나는 머리를 더 한층 낮게 조아렸다.


암튼 좋긴 좋다. 역시 대가는 대가다.


똥구멍


그는 그녀의 "그래"를 들으나 여전히 갈증을 느낀다. 그녀는 요정처럼 순결해 보이며 그런 그녀가 제 입으로 이렇게 내뱉는 소리를 듣고 싶은 것이다. "똥구멍"
그는 그런 말을 발설하는 요정의 입이, 정말 미치도록 보고 싶은 것이다! 그는 그녀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날 따라해 봐, 똥구멍, 똥구멍, 똥구멍. 하지만 그는 감히 그러지 못한다.


속도


속도는 기술 혁명이 인간에게 선사한 엑스터시의 형태다. 오토바이 운전자와는 달리, 뛰어가는 사람은 언제나 자신의 육체 속에 있으며, 끊임없이 자신의 물집들, 가쁜 호흡을 생각할 수밖에 없다. 뛰고 있을 때 그는 자신의 체중, 자신의 나이를 느끼며, 그 어느 때보다도 더 자신과 자기 인생의 시간을 의식한다. 인간이 기계에 속도의 능력을 위임하고 나자 모든 게 변했다. 이때부터, 그의 고유한 육체는 관심 밖에 있게 되고 그는 비신체적, 비물질적 속도, 순수한 속도, 속도 그 자체, 속도 엑스터시에 몰입한다.


입맞춤


그들 밤의 첫째 단계의 끝. 기사가 지나치게 의기양양해하지 않도록 그에게 동의해 준 그 입맞춤이 또 다른 입맞춤에 이어졌고, 입맞춤들이 <빨라졌고, 간간이 대화를 중단시켰고, 그것을 대체해 버렸다......>. 한데 그녀가 몸을 일으키더니 길을 되돌아 가기로 결심하지 않은가.


카메라


이보시오, 우리는 우리가 태어나는 시기를 선택할 수가 없어요. 그리고 우리 모두가 카메라의 시선 아래 살고 있소. 이제 그것은 인간 조건에 속하는 거요. 우리가 전쟁을 할 때조차도, 카메라의 눈 아래에서 합니다. 그리고 그 무엇에 대해서 항의하고자 하건, 카메라 없이는 우리의 주장을 남들이 듣도록 하지 못해요. 우리 모두가, 당신이 말하는 그 춤꾼들이요.


위에서 인용한 문장 하나하나는 세상 진지하다. 대놓고 우스개 소리를 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전체적인 구도를 보면 웃기다. 점잖게 유머를 던지는 편이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말싸움 부분에서는 오랫동안 곰곰이 생각해 보고 나서야 비로소 웃을 수 있었다. 바로 벵상과 베르크의 논쟁이다. 베르크는 명예를 먹고 산다. 사람들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고민하고 충실히 연기한다. 벵상은 그를 카메라 앞의 춤꾼이라 비난한다. 하지만 베르크는 아주 효과적으로 반박한다. 카메라는 우리 삶의 조건이라고. 벵상은 우물쭈물하다 뒤늦게 이를 반박하고 비난할 논리를 찾았는데 그게 바로 베르크의 논리였다. 결국 논리는 돌고돌아 스스로를 옹호하고, 비난은 돌도돌아 스스로를 공격하는 것이다.


적고 보니 아주 혼란스러운데, 이걸 보고 웃기 위해 나는 세 번 읽었다. 제목이 왜 「느림」인지도 그제야 알았다. 밥 먹듯이 책을 읽는 나도 세 번 읽었으니, 소식하는 평범한 독자들에게는 네 번 읽기를 권한다.


구성이 복잡해서 설명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다. 여러 번 읽으며 전체적인 구조와 의도를 이해하는 것 자체가 이 책의 가장 큰 재미니, 이 정도로 참겠다.



★★★★ 대가의 유머집. 철학자가 쓴 최불암 시리즈라고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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