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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태원댄싱머신 Sep 28. 2020

수도권 대학 정원을 줄여야

 _강준만 「지방은 식민지다」

강준만은, 언제나 남들이 지나치고 있지만 중요한 이야기를 정확하게 꼬집는다. 평소 수도권 집중 문제에 관심이 많아서 강준만의 글을 자주 읽었다. 이 책은 제목처럼 정확히 지방 문제에 초점을 맞춰서 이야기 한다. 수도권 위주 정책도 비판하지만, 지방에도 비판의 화살을 겨눈다. 날카롭고 따끔하지만, 그래도 애정이 담겨 있다.



일기 쓰듯이 책을 내는 강준만의 글이다 보니, 잡다한 이야기가 다 담겨있다. 지방 정부, 지방 의회, 지방 언론, 지방 교육, 지방 문화 전부 다 다룬다.



작은일


모든 정책은 수도권 위주로 이루어진다. 지방 관련 정책은 하찮은 일로 여겨진다. 지방의 정치인은 서울로 올라가려 하고, 지역 인재는 서울 소재 대학으로 올라가려고 한다. 한번 가면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이젠 제발 나라 걱정하는 분들이 나라 걱정 좀 그만하고,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아도 좋으니 자신이 살고 있는 작은 지역 걱정부터 하면 좋겠다. 우리는 늘 '큰일' 걱정만 하다가 '작은 일'을 소홀히 함으로써 종국엔 '큰일'을 망치는 게임을 하는 것 같다. 또한 입만 열면 '위에서 아래로'의 방식을 비판하는 사람들이 왜 세상을 바꾸는 일마저 '위에서 아래로'의 방식에 의존하는지 모르겠다.
'위에서 아래로'의 방식을 고집하는 데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건 권력투쟁과 인정욕구다. 속된 말로 크게 놀고 싶어한다는 뜻이다. 반면 '밑에서 위로'의 방식은 헌신적인 실천을 필요로 한다. 빛이 나기도 어렵다. 권력을 멀리해야만 가능한 일이다. 이제 개혁·진보운동은 기존 권력투쟁의 패러다임에서 탈출해야 한다.


제로섬


지방에는 제도의 혜택이 돌아가거나 현금이 흘러가기 어렵다. 수도권으로 흘러가기 때문이다. 지방을 지원하겠다, 말하기는 쉽지만, 수도권에서 가만두지 않는다.


이 정권의 강한 의지를 믿는다 해도 실현되기 어려운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이 정권이 돈을 땅에서 캐내는 건 아니라는 점이다. 국가의 지원은 누구에게 더 주면 누구에게 덜 돌아가는 '제로섬 게임'이다. 국가의 지원을 지방에 집중한다는 건 수도권으로 돌아갈 지원이 줄어든다는 걸 의미한다. 수도권 이해 당사자들이 그걸 팔짱 끼고 구경만 할 리는 만무하다.



대학


공공기관이 지방으로 이전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결국 자녀교육 때문에 기러기가 되기 때문이다. 대학의 지방 이전이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에, 저자는 수도권 대학의 정원 축소와 지방 대학의 지원을 주장한다.


혹자는 이제 수많은 공공기관들이 지방으로 이전할 것이니 그 효과를 기대해보자고 말하겠지만, 얼마나 많은 직원들이 지방으로 이사를 갈 거라고 추정하는지 궁금하다. 자녀를 지방으로 데리고 내려갈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최근 한 조사에서는 어느 공공기관의 경우 지방으로 이사할 뜻이 있는 직원은 10%대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태평양을 사이에 두고 떨어져 사는 '기러기 부부'를 양산할 정도로 한국인의 자녀 교육열은 세계 최고다. 그건 국가경쟁력 차원에선 우리의 자랑일 수도 있겠지만 개인적 삶의 질에 있어선 재앙을 초래하기도 한다. 공공기관들의 지방 이전이 완료될 경우 서울·지방간 교통량만 폭증하고 직원들의 삶만 고달파진다는 건 쉽게 예측할 수 있는 일 아닌가.



정당


투표할 때 가장 중요한 판단 기준이 정당이다. 지방에서는 그 중요성이 더욱 커진다. 사람들이 정당에 집착하는 이유는 정당을 신뢰하기 때문이 아니다. 사실 그 반대다.


한국인의 정당 충실도는 대단히 높다. 아니, 지지하는 정당이 없다는 사람이 다수인데, 그게 무슨 말인가? 투표시에 그렇다는 것이다. 평소엔 지지하는 정당이 없을 뿐만 아니라 정당들에 침을 뱉다가도 투표를 할 때엔 정당만 보는 게 한국 유권자들의 속성이다.
왜 그럴까? 한국인들은 정당민주주의의 신봉자들이기 때문인가? 아니다. 오히려 정반대다. 정당을 신뢰할 수 없는 집단으로 간주하기 때문에 더욱 정당에 집착한다. 정당이 공명정대한 집단이라면 굳이 정당에 연연할 이유는 없다. 정당은 불공정과 편파에 능한 집단이기에 지역 발전을 위해선 힘이 있는 정당을 무시할 수 없다는 게 유권자들의 오랜 경험에서 비롯된 통찰이다. 좀 점잖게 이야기하자면, 유권자들에겐 정당정치의 신념보다는 정당 중심의 정략적 파워에 대한 기대(또는 공포) 심리가 강하다는 뜻이다.


민원 해결 저널리즘


지방 언론은 죽어간다. 지방 언론을 구독하는 곳은 관청이거나 기업이다. 일반 시민들은 거의 안 본다고 봐야 한다. 강준만은 모든 장에서 나름의 아이디어를 제시하는데, 그중에 민원 해결은 가장 실현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지역 현안을 찾아서 해결하는데 집중하면 지역의 특수성에 더 밀착해서 수도권 언론과 차별화를 줄 수 있다. 교통 문제도 좋고, 환경 문제도 좋다.


첫째, 지역발전에 실질적으로 기여할 수 있다. 공공적 차원에서 민원의 공론화는 기존의 불합리한 법과 조례와 관행을 바꿀 수 있다. 공론화 없이 개인적 차원에서 해결하는 것은 그러한 문제들을 반복 생산해낼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둘째, 지역민의 지역언론에 대한 관심과 신뢰를 제고할 수 있다. 지역언론의 가장 큰 문제는 지역민의 무관심이다. 물론 그건 지역의 서울종속이라는 근본적인 이유 때문이지만, 심리적으로 더 악화되는 것만큼은 막아야 한다.
셋째, 지역언론의 지역밀착성 보도를 강화할 수 있다. 그간의 지역 밀착성은 생활과는 동떨어진 '거대이슈' (예컨대 자기 지역이 홀대받고 있다는 등의 보도)에 치중해 겉도는 측면이 있었다. '작은 것이 더 중요하다'와 '한 번 보도한 건 끝까지 책임진다'는 구호를 실천해보는 게 어떨까?
넷째, '민원 해결 저널리즘'은 큰 갈등 없이 거의 모든 사람들로부터 박수를 받을 수 있다. 무슨 비리를 캐내는 '폭로 저널리즘'과는 달리 신문사에서 마음만 먹으면 비교적 쉽게 실천에 옮길 수 있다는 말이다.


취미


지역 기반 독서모임을 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이 부분에 관심이 갔다. 지역 문화를 활성화하거나, 새로운 방향의 문화를 만드는데 취미만큼 효과적인 수단이 없다.


가장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주5일 근무제'와 함께 대두된 '여가 공동체'를 공략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는 점이다. 우선 내부에서부터 시작해보자. 오늘날 많은 사람들을 불러 모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행사는 '취미'와 관련된 것이다. 예컨대, 2003년 9월 21일 전주에서 열린 인라인 마라톤대회엔 4000여 명의 시민이 참가하였다. '취미' 이외에 그 어떤 걸로 이처럼 많은 사람들을 한 곳에 집결시킬 수 있겠는가. '취미'에 엔터테인먼트 요소만 가미하면 어느 지역에서건 수만 명의 인파를 불러 모으는 건 일도 아니다. 대통령이 온다 해도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모이진 않을 것이다.


아무래도 사회비판서다 보니 읽다 보면 속 터진다. 우리 사회가 이렇게 문제가 많구나. 수도권 집중 현상은 도저히 해결될 기미가 안 보이는구나, 하는 답답함이 몰려든다. 그래도 언어화 시키는 건 중요하다. 이제 논의를 시작할 수 있다. 나도 내 지역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하기 시작했다. 일단 언론부터 찾아보고 싶다.


★★★★★ 아직 시작이고 문제제기 단계다. 앞으로 수도권 집중 문제에 진전이 있길 바라고, 변화된 상황에 맞는 책이 나오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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