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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태원댄싱머신 Sep 29. 2020

강남좌파 비판은 끝나지 않았다

 _강준만 「강남좌파2」

첫번째 책은 2011년에 나왔다. 강남좌파라는 단어를 공론장으로 꺼냈고, 대표적 인물로 조국을 거론했다. 조국 사태라는 어마어마한 갈등이 지나고 나서 두번째 책을 냈다. 역시 생각해볼 만한 이야기들을 어마무시하게 쏟아낸다.




1% 대 99% 사회 프레임


어휘는 갈수록 과장되기 마련이다. 표현에도 인플레이션이 있다. 그냥 나쁘다고 하면 부족하니 암덩어리라고 표현하고, 조금 권위적이라고 하면 약하니 독재라고 비판하게 된다. 1 대 99 사회 프레임도 마찬가지다. 20 대 80 사회 프레임이 유행하던 시기가 있었다. 이게 어느 순간 10 대 90 사회 프레임으로 기울어지더니, 이제는 1 대 99 사회 프레임으로 대한민국 사회를 비판한다. 이게 정말 지금의 한국 사회를 제대로 표현하는 프레임일까. 정말 상위 1%만 모든 부를 다 가져가고, 모든 불공정을 벌이고, 유리 천장, 유리 바닥을 만드는 걸까.


2019년 9월 한국장학재단의 통계에 따르면, 국내 의대에 다니는 학생의 절반가량은 가구 소득이 9·10분위에 속하는 고소득층 자녀들인 것으로 나타났다. SKY도 재학생 10명 중 4명은 가구 소득이 9·10분위인 집안의 자녀들이었다. 2019년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신입생 10명 중 5명은 SKY 출신이었다.
더욱 심각한 건 불로소득이다. 국세청의 ‘2017년 귀속 양도소득과 금융소득’ 자료를 보면, 부동산 양도차익과 금융소득 등 대표적인 불로소득이 135조 6,000억 원인 것으로 나타났다. 전년(112조 7,000억 원)보다 20%나 증가한 것이다. 물론 이런 불로소득은 거의 대부분 상위 10%의 몫이다. 개인별 소득을 파악할 수 있는 배당·이자소득(33조 4,000억 원)을 살펴보면, 상위 10%가 차지한 몫은 각각 93.9%와 90.8%에 달했다. 이는 한국이 그 어떤 나라보다 ‘1 대 99의 사회’가 아니라 ‘10 대 90의 사회’, 더 나아가 ‘20 대 80의 사회’를 기본 프레임으로 삼아 개혁에 임해야 한다는 걸 말해준다.


통계는 10% 혹은 20%의 상위계층이 모든 부를 차지고 있다고 말한다. 1%만 이야기해서는 안 된다. 그렇다면 왜 맞지도 않는 프레임을 가져다 사용할까. 여기에 큰 문제가 있다. 상위 1%에는 속하지 않는 상위 19%가 스스로를 빼놓고 비판하기 위한 수단이 된다.


이 정도면 왜 강남 좌파가 '1대 99의 사회'를 외치는지 이해할 만하지 않은가. 이들이 외치는 진보는 부지불식간에 자신의 경제적 기득권 유지를 전제로 한 것일 가능성이 높다.


내부의 싸움을 피하기 위한 목적도 있다. 친분이 있는 주변 강남좌파들을 공격하기 싫은 거다.


자기 진영 내부에 긴장과 갈등을 일으킬 수 있는 주제보다는 진영 논리에 충실한 '모범 답안'만 이야기하려는 안전의 욕구가 1% 비판만 하게 만든다. 자신도 포함되는 19%에 더 많은 세금을 거두어야 한다는 주장은 끼리끼리 어울리는 주변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들 수 있다.



능력주의 신화


능력주의 신화는 이들의 기득권을 공고하게 만든다. 부패한 보수가 자녀에게 부를 세습하지만, 자신들은 다르다는 것이다. 실제로 강남좌파의 자녀들은 공정하게 능력을 획득하고 부를 거머쥐게 된다. 과정이 공정하다고 했을 때, 이건 상속과 얼마나 다른가?


교육은 사회적 불평등 유지와 강화에 기여한다. 특히 고등교육 시스템은 특권을 부여하고, 지위를 할당하고, 기존 사회제도에 대한 존경을 배양시키는 기능을 수행한다. 형식적인 평등에 대한 광범위한 신념은 지배계급이 그 지위를 공개적으로 자식에게 물려주는 걸 어렵게 한다. 새롭고 더욱 신중한 사회통제와 지위 상속 수단이 있어야만 했다.


교수가 자녀에게 교수직을 물려주는 것을 볼 수 있을까? 지금 시대에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아주 우연히도 교수의 자녀들은 교수가 된다. 공정하게 능력을 획득했기 때문이다.


요컨대, 능력주의는 다음과 같은 이유로 인해 신화에 지나지 않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능력을 이겨버리는 비능력적 요인들, 즉 차별적 교육 기회, 불평등한 사회적 자본과 문화적 자본, 특권의 상속과 부의 세습, 개인의 능력으로는 도저히 손쓸 방법이 없는 불가항력적인 요인들, 자영업자의 자수성가를 방해하는 대기업, 편견에 의한 차별 등은 모두 능력주의 시스템을 방해하는 요인들이다."



도덕적 면허


폭력과 억압에 맞서 싸우고 민주화를 이뤄냈던 386운동권들은 왜 기득권이 되었을까. 왜 진영논리와 특혜에서 빠져나오지 못할까.


이게 바로 '도덕적 면허 효과'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과거 선행이나 도덕적 행동을 하면, 도덕성에 대한 자기 이미지가 강해지는데, 이런 긍정적 자기 이미지는 자기 정당화의 방편으로 사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이미 착한 일은 많이 했기 때문에, 이 정도 나쁜 일은 괜찮다고 생각하는 심리를 갖게 된다는 이야기다.


실제 미 대선에서 버락 오바마를 찍었던 사람들이 더 백인을 선호하는 경향을 보였던 실험 결과도 있었다.


정치적 이슈를 고민하다보면, 진영 논리에서 빠져나오기 쉽지 않다. 그래서 강준만이 꼭 필요하다. 진보도 비판하고, 보수도 비판한다. 공중파스러운 양비론이 아니다. 오히려 반대다. 사안별로 생각해볼 만한 논리를 설득력 있게 전개한다. 강준만은, 등에(쇠파리) 역할을 자처하는, 이 시대의 소크라테스다.


★★★★★ 강남좌파 되는 게 어렸을 적 내 꿈이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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