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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태원댄싱머신 Oct 16. 2020

얄미운 에리히 프롬

 _에리히 프롬 「사랑한다는 것」

사랑에 빠진 사람이 있다면, 이 사람을 조심하라. 에리히 프롬. 연애를 얼마나 많이 해봤는지는 모르겠지만, 사랑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떠벌린다. 사람 김 빠지게 하는데 선수다.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면, 생각만해도 배시시 웃음이 나올 것이다. 사랑은 행복과 구분이 잘 안된다. 사랑이 가득차 넘치고 스스로의 용량으로 감당하지 못할 때, 에리히 프롬은 몰래 다가와 속삭인다. 그 감정, 오래 못 간다.


무엇보다 첫째로, 그것은 흔히 사랑에 빠졌다고 말하는 폭발적인 경험과 혼동된다. 그 순간까지 두 이방인 사이에 존재했던 장벽이 갑작스레 붕괴되는 경험을 사랑이라고 여기는 것이다. 그러나 앞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이러한 갑작스런 친밀감은 그 본질상 오래 못 가는 단기적인 것이다.
 _에리히 프롬 「사랑한다는 것」


평소에는 나밖에 모르던 사람도 마음의 여유가 생긴다. 맛있는 것을 봐도, 혼자 먹고 싶다는 마음보다는 함께 나누고 싶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 내가 더 좋은 사람이 된 것 같다. 그리고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 하고 주먹을 쥘 때, 에리히 프롬이 찾아온다. 그리고 말한다. 이기주의가 2배로 늘어봤자, 확장된 이기주의에 불과하지.


이성애의 배타성은 흔히 소유욕에 부리를 둔 애착심을 의미하는 것으로 오해된다. 우리는 서로 사랑하나 다른 사람들은 사랑하지 않는 두 사람을 흔히 본다. 그들의 사랑은 사실상 이기주의가 2배로 늘어난 결과물에 지나지 않는다.
 _에리히 프롬 「사랑한다는 것」


매일 연락하고 싶고 항상 궁금하다. 애인을 위해서라면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다, 금연을 제외하고는. 제발 누가, 애인을 얼마나 사랑하냐고 물어봐줬으면 좋겠다. 소리, 소리를 내지르며 내 사랑을 표현하고 싶다. 그만큼 많이 좋아한다는 뜻이다. 에리히 프롬은 불쌍하다는 표정으로 말한다. 그동안 많이 외로웠구나?


실제로 이렇게 정신나간 상태 ㅡ즉 서로에게 '미친' 상태ㅡ의 강도를 사랑의 강도로 생각한다. 그렇지만 그 느낌은 단지 그들이 전에는 얼마나 고독했던가를 증명하는 것일 뿐이다.
 _에리히 프롬 「사랑한다는 것」


사랑에 빠지면 없던 종교도 생기고, 우상 숭배에도 빠지게 된다. 이렇게 사랑스러운 사람이 나를 좋아하다니. 겨우 나 따위 무능력자 무매력자를 좋아하다니. 너가 로또라며, 더이상 로또를 사지 않겠다 다짐할 때, 에리히 프롬은 넌지시 말한다. 원래 끼리끼리 만나는 거야. 어느 정도 레벨이 되어야지.


어찌되었든 간에 사랑에 빠진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는 상대는 자신과 교환할 수 있는 범위 내의 인간 상품뿐이다. 내가 물건을 사러 시장에 나간다고 하자. 대상은 사회적인 가치의 관점에서 볼 때 바람직한 것이어야 하고, 동시에 그 대상은 나의 공개된, 또는 숨겨진 자산과 잠재력을 고려하여 나를 원해야 한다. 이와 같이 두 사람은 자신들의 교환가치의 한계를 고려하여, 시장에서 가장 좋은 대상을 발견했다고 느낄 때 사랑에 빠지게 된다.
 _에리히 프롬 「사랑한다는 것」


너무 마음에 드는 사람을 만나서 정말 기쁘다. 오랜 기간 마음을 표시했고, 마침내 받아들여줬다. 정말 잘 해주고 싶고, 잘 해줄 자신이 있다. 이때, 손담비*가 나타나 가소롭다는 듯이 말한다. 좋은 사람을 만나면 좋은 사랑을 할 수 있을 것 같아?


사랑이란 활동이며 정신의 힘이라는 것을 모르기 때문에, 그는 올바른 대상을 발견하기만 하면 만사가 해결되리라 믿는다. 이러한 사람은 그림을 그리고 싶으나 그리는 기술을 배우는 대신 알맞은 대상을 기다려야 하며, 그 대상을 찾았을 때 아름답게 그리겠다고 주장하는 사람과 다를 바 없다.
 _에리히 프롬 「사랑한다는 것」


이렇게까지 어깃장을 놓으면, 답답해서 물어볼 수밖에 없다. 좋아요. 그만 방해하고, 이제 그림 그리는 방법을 알려줘요. 어떻게 해야 사랑을 잘 할 수 있는데요?


이제 에리히 프롬은 신나서 자신의 사상을 늘어놓기 시작한다. 얄미운 그 표정보다 더 놀라운 건, 그의 말이 진실에 가깝다는 것이다. 우리는 사랑에 대해 오해하고 있었다.




* 손담비 : 업신여기는 표정의 상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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