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상가 쌍방폭행
부산에서 쌍방폭행, 데이트폭행 사건이 일어났다. 매일 출근하듯 벌어지는 사소한 쌍방폭행 중 하나겠지, 하고 관심도 주지 않았다, 영상을 보기 전까지는. 허걱 소리가 사무실 전체에 울린 후에, 동료의 휴대폰을 슬쩍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경악했다.
내가 본 영상을 어떻게든 묘사하고 싶었지만, 썼다 지우고 또 썼다 지웠다. 그 잔혹성을 언어로 표현할 능력이 부족하다. 허걱. 나는 이걸 허걱이라 표현할 수밖에 없다. 건물이 쩌렁쩌렁 울리도록 외칠 수밖에 없는 허걱을, 이걸 사람들이 쌍방폭행이라고 부르는구나, 하고 다시 한번 놀랐다. 두번째 울린 허걱을 달래면서 잠시 걸었다.
사람들은 이걸 어떻게 볼까.
비슷한 사건이 어쩌면 매일같이 벌어질지도 모르는 흔하디 흔한 이 사건을, 언어로 접한 사람은 아마도 그냥 흘려 넘겼을 것이다, 나처럼. 여자가 발로 찼고 남자는 주먹으로 얼굴로 때렸다. 이 문장을 보고 각자 쌍방폭행 장면을 떠올렸을 것이다.
이 사건을 영상으로 접한 사람은 다른 반응을 보였을 거다. 쌍방폭행이라는 단어에서 떠올린 모습과 실제 영상의 차이는 아침 출근길만큼 길다. 나는 허걱을 외쳤고. 다른 사람들은 이 괴리감을 각자의 허걱으로 외쳤을 거다. 그리고 이어서 남자를 욕할 거고. 만약 남자라면, 이 미친놈과 나는 다르다고 여겼을 거다, 나처럼.
나는 미친놈을 보면 일단 욕하고, 이어서 안심한다. 요즘 미친놈이 참 많아. 요즘 참 험한 세상이야. 위험해서 밖에 나가기도 참 불안해... 하며 미친놈과 거리를 둔다. 재미있는 건, 이런 미친놈이 아주 많다는 것이다. 미친놈은 길거리에 널렸는데, 많은 사람들이 다 자기는 미친놈이 아니라고 하면, 미친놈은 다 어디에 숨어서 빨래처럼 널려있는 걸까.
최악의 남자는 차악의 남자를 돋보이게 한다.
최악의 남자는 이렇게 차악의 남자를 돋보이게 해준다. 나도 미친놈도 평화로운 가부장 사회에서 더불어 살고 있다. 가끔 두드러지게 미친놈이 나오면 나머지 놈들은 미친놈을 욕하며 자신은 다르다고 주장할 수 있다.
술 마시고 강간하는 나쁜 남자 덕택에, 술만 먹으면 섹스를 강요하는 자신은 별문제가 안 된다. 술 마시고 애인을 살해하는 남자 덕택에, 술만 먹으면 무엇인가 집어 던져버리며 욕설을 퍼붓는 자신은 별문제가 안 된다. 결국 남자들은 '나는 그 정도는 아니다'라면서 일상에서 무의식적으로 저지르는 유·무형의 폭력을 계속 유지한다. 그래서 '괴물까지는 아닌' 자신이 좋은 남자라고 착각한다.
_오찬호 「그 남자는 왜 이상해졌을까」
영상 속에서 여자는 발로 남자를 툭하고 찬다. 남자는 살짝 밀려난다. 남자는 곧바로 달려들고 여자는 펀치머신이 되어버렸다. 그녀의 어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우리의 어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가부장의 폭력을 온 얼굴로 받아들였다.
여자친구는 나를 발로 툭 차지 않는다. 아무리 화나도 차지 않는다. 여자친구도 이 영상을 봤을까.
고민하다 영상의 링크를 단다. 영상을 보고 느낀 분노가 일시적으로 소비되지 않길 바란다.
https://www.youtube.com/watch?v=6I9K4BmAiR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