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정용준 「내가말하고있잖아」
나는 잘해 주면 사랑에 빠지는 사람이다. 누군가 한 손을 내밀어 주면 두 손을 내밀고, 껴안아 주면 스스스 녹아 버리는 눈사람이다.
나는 친절한 사람을 싫어하겠다. 나는 잘해 주는 사람을 미워하겠다. 속지 않겠다. 기억해. 아무도 나를 좋아하지 않아. 내 편은 아무도 없어. 그러니까 바보 멍청이 이 똥 같은 놈아. 아무것도 기대하지 마.
과거의 난 그랬다. 잘해 주기만 해도 돌멩이도 사랑하는 바보였지. 하지만 열네 살이 된 지금은 다르다.
읽을 수 없는데 어떻게 천천히 읽나. 차분하게 읽으면 읽어져? 다리 부러진 사람한테 심호흡하고 다시 달려봐, 하는 것과 뭐가 달라. 다시 더듬었다. 또 더듬고 또 더듬다가 고개를 숙이고 만다.
언젠가 토스트가 내 노트를 몰래 읽어 본 적이 있었다. 왜 남의 허락 없이 읽으냐고 화를 냈더니 그냥 펼쳐져 있어서 읽었다고 자신이 뭘 잘못했냐고 뻔뻔하게 웃었다. 그리고 일기든 편지든 글자로 적힌 것들은 다 읽히고 싶어 한다고 했다. 그래서 네가 쓴 글을 위해서 내가 어쩔 수 없이 읽어 줬다는 되도 않는 말을 했다. 화가 나서 가방에 노트를 집어넣고 있는데 토스트가 작가처럼 말했다.
그러니까 네가 이해해. 다 그러려니 해. 그리고 미워해. 마음껏 미워해. 괜찮아. 일기에 죽이고 싶다고 마음껏 써도 되고. 그런데 그걸 말로 행동으로는 하지 마. 기다리면 돼. 나쁜 짓을 하면 언젠가 죄를 받고 죽어야 할 사람은 알아서 다 죽게 된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