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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태원댄싱머신 Dec 16. 2020

따뜻한 롱패딩

원래는 매일 카페를 다녔다. 놀러가는 경우도 있지만, 카페를 방문하는 게 내 일이다. 팔자가 편하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었다.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로 격상 되기 전까지는!!


이제는 테이크아웃만 가능하다. 스타벅스 무료 쿠폰이 넘쳐나지만 쓸모가 없다. 그래도 커피는 산다. 길거리에 서서 마신다. 덜덜 떨면서도 마신다. 회사 돈을 사용하지 않으면, 절약한 기분이 아니라, 손해본 기분이 드는 건 왜일까.


히터가 제 몸에 달린 온도계 눈금을 끌어올리려고
애는 쓰는데 안되니까
버스매표소 구석에서 그냥 울고 있다
 _이상국 「용량」


추워에 떨며 길거리에 서서 커피를 마시다, 도저히 안되겠다 싶어, 옷장을 열었다. 작년에 탑텐에서 산 롱패딩을 꺼냈다. 겨울 옷은 겨울 옷 세일할 때 산다. 가격은 온도만큼 뚝 떨어진다. 그러면 이미 겨울은 문 닫기 직전이라서 한두번 정도 입으면 쌀쌀한 봄이 찾아온다. 그렇게 옷장에서 오매불망 다음 겨울을 기다리던 롱패딩을, 어제 꺼냈다.


정말 신기하다. 이거 하나로 따뜻하다. 모자까지 달려 있어서 찬바람이 들어올 틈이 없다. 문명은 정말 대단해. 문명의 상징을 입고 돌아다니면 키도 약간 커 보인다.


두꺼운 털 같은 추위
둥글게 말아 웅크리면 따뜻해지는 추위
너무 껴입어서 무거운 추위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공격하지 않고 멀뚱멀뚱 쳐다보는 추위
이빨도 발톱도 없는 꼬리를 흔드는 추위
배고프면 더 신나게 흔드는 추위
숨쉴 때마다 텅 빈 위장에 밥 대신 들어앉아
배고픈 배 흔들며 뛰어노는 추위
뱃가죽과 등뼈가 서로 얼어붙으면
저절로 허리가 공손하게 굽어지는 추위
정신통일하여 밥생각을 하면
가만히 졸다가 따뜻해지는 추위
 _김기택 「겨울을 기다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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