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독서머신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태원댄싱머신 Dec 23. 2020

허연 책방

 _허연 「당신은 언제 노래가 되지」

여자친구와 제주도를 여행했다. 원래, '서점에 가자, 하루에 한두 곳 서점을 들리자' 고 계획을 했으나, 챙겨온 서점 지도를 찾는 것부터 실패했다. 우왕좌왕 하다 그냥 맛있는 거 먹고 쉬었다. 황금향도 많이 먹었다.


그래도 여기는 갔다. 「유람위드북스」



도서관/서점/카페를 합친 듯한 공간이다. 파는 책도 있지만, 대부분의 책은 마음대로 읽을 수 있었다. 도서관 같은 공간이며, 커피도 판다. 고양이가 돌아다닌다.



의자와 소파가 일반 카페처럼 다닥다닥 붙어있지 않았다. 적당히 여유부릴 수 있게 띄엄띄엄 배치했다. 그만큼 자리가 빨리 찼다. 우리가 앉은 자리도 마지막 남은 자리였다.



나는 여기서 시집을 샀다. 요즘 시집에 꽂혀서, 매주 한두 권은 읽는다. 미리 사놓고 안 읽은 책이 한 무더기라 더 살 필요는 없지만, 제주도에 온 기념으로 샀다.



열심히 읽었다. 위로를 받았고, 마음에 드는 문장도 많이 찾았으나, 감상을 언어로 표현한 능력이 없다. 언젠가 '허연의 시가 어쩌고저쩌고' 하며 떠벌일 날이 오겠지.



트램펄린

그런 것들이다 내가 아쉬운 건
트램펄린에 오를 때
나는 이미 처지가 정해져 있었고
그걸 누구에게 묻지는 못했고

트램펄린 밖으로 떨어진 소년
최선을 다해서 태연하고 최선을 다해서 일어서는 소년

그런 것들이다 언제나
어른들은 타협하고 소년들은 트램펄린에서 떨어지고

그런 것들이다 내가 아쉬운 건

하지만
트램펄린에 오를 때
이미 준비된 실패라는 걸 알았고
예정된 마지막 장면을 후회하지도 않았고

그냥 트램펄린이란 트램펄린은 모두 불태워졌으면 좋겠다

자꾸 오르게 되니까
또 최선을 다해 떨어질 테니까
떨어질 처지라는 걸 아니까

트램펄린에 날 던지면서 말한다
"말해줘 가능하다면 내가 세상을 고르고 싶어"

생각이 있으면 말해주리라 믿었지만
트램펄린은 그냥
나를 떨어뜨리고
미워하지도 않으면서 나를 떨어뜨리고
그러면 내 처지도 최선을 다해 떨어지고

세상에서 트램펄린이 모두 사라졌으면 좋겠다

그렇지만 아쉽다
날아오르는 몇 초가 달콤했기 때문에

 _허연 「당신은 언제 노래가 되지」


트램펄린이 너무 싫은데, 달콤한 순간이 분명 있고, 결국 떨어질 거라는 걸 알지만, 그래도 뛰고 싶은 마음... 우리의 삶을 재미있게 잘 표현한 시다. 트램펄린에서 잠시 내려와 제주도에서 읽으니 더 와닿았다.


★★★★★ 황량한 사막 같은 시인데 목이 마르지는 않다.

매거진의 이전글 독일 단편소설은 재미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