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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태원댄싱머신 Jan 26. 2021

물갈이를 물갈이하자

 _강준만 「청년이여, 정당으로 쳐들어가라!」

불교는 아니지만 절에 가끔 간다. 산책하는 마음으로 가는데, 들어간 김에 법회*에 참석하기도 한다. 지인의 초대로 교회 예배도 가끔 갔다. 정기적으로 가지는 않는다. 절과 교회에 큰 차이가 있는데, 바로 참여인원이다. 교회는 다양한 연령대가 다 모인다. 특히 청년부에는 이십대 삼십대가 바글바글하다. 절은 절대적 인원 수도 적지만, 청년부가 특히 적다. 사십대면 청소년 축에 속한다. 그만큼 절은 청년에게 외면받고 있다. 절만큼 청년에게 인기 없는 분야가 하나 더 있는데, 바로 정치다. 청년 정치는 선거 때마다 나오는 키워드지만, 청년 표를 모으기 위한 일시적 구호에 불과하다. 당연히 실질적인 변화는 없다. 변화할 이유도 없다. 답보 상태인 청년정치에 대한 강준만의 분석과 주장을 담은 책을 읽었다.


 *법회 : 절에서 가르침을 나누는 행사. 주말에 진행된다. 교회로 치면 예배.




정치혐오


청년들이 직접 정치에 뛰어들어 정책을 결정하지 않으면, 바뀌는 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뜻 뛰어들지 못하는 이유가 있다. 바로 정치혐오. 얼마전까지 내 입으로 침 튀기어가며 열심히 욕했던 바로 그 정치에 손을 댈 수는 없다. 정치혐오에서 벗어나야 한다. 정치에 대해서는, 눈높이가 너무 높다. 이상적인 정치를 마음대로 상정하고 그걸 현실과 비교하는 습관이 있는 것 같다.


정치란 무엇인가? 우리는 무엇이어야 한다는 정의를 먼저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그 정의는 현실과 들어맞지도 않거니와 영원히 들어맞을 수도 없게 되어있다. 최선의 정의를 내리고 나서 정치를 보기 시작하면 정치에 대한 좌절과 환멸은 불가피하다. 반면 최악의 정의를 내려놓고 정치를 보면 정치인들에 대해 한결 너그러워질 뿐만 아니라 정치 개혁은 '머리싸움'이며 그래야만 한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_강준만 「청년이여, 정당으로 쳐들어가라!」



분노


정치혐오에 익숙한 사람들이 주로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는 데 반해, 정치에 적극적으로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은 쉽게 분노한다. 현실에 분노하고, 상대 정당에 분노하고, 선거결과에 분노한다. 실망하고 좌절에 빠지면, 정치혐오 쪽으로 자리를 옮기기도 한다. 그렇게 정치혐오는 세력을 늘린다.


악이 더 힘이 세고 가진 자들이 힘이 세면 싸움에서 그들이 승리하는 게 맞다. 세상은 생각만큼 쉽게 바뀌지 않으니까. 그러나 반드시 변화하기는 한다. 원하는 만큼 바뀌지 않는다고 진보는 조급함을 갖는다. 그리고 그 조급함을 분노와 적대감을 표출하는 방식으로 해소한다. 진보의 내면이 단단하지 않기 때문이다.
 _조성주 「이데올로기 없이도 세상을 바꿀 수 있다」 2015-07-07 주간경향 기사



물갈이


선거가 다가오면 사람들이 자주 이야기하는 게 물갈이다. 지금의 정치인들은 썩었으니 새로운 사람을 뽑으면 물이 조금 맑아질 거라는 기대다. 재미있는 건, 매번 선거 때마다 절반의 국회의원이 물갈이 되고 있는데도, 사람들은 여전히 물갈이를 기대한다는 것이다. 정말 초선의원이 많아지면 맑아지는 걸까.


'물갈이'란 말 자체가 잘못되었다. 우리는 물은 그대로 두고서 '고기갈이'를 하는 걸 물갈이라고 부름으로써 스스로 우리 자신을 속이고 있다. 썩은 물, 썩은 시스템을 그대로 두고 아무리 새 고기를 넣어보아야 달라지는 건 전혀 없다는 건 지난 수십년간 질리도록 목격해온 사실임에도 선거 때만 되면 그걸 까맣게 잊고서 고기갈이를 요구하면서 그걸 물갈이라고 부르고 있는 것이다.
 _강준만 「청년이여, 정당으로 쳐들어가라!」



공동체


미국의 흑인 인권운동이 성공한 것도 탄탄한 흑인 공동체가 있었기 때문이다. 파편화된 청년이 자신들의 목소리를 낼 수 있을까. 정치뉴스의 댓글에 정치혐오를 쏟아내고, 연예기사의 댓글에 소수자혐오를 쏟아낼 수 있을 뿐이다. 청년에게도 공동체가 필요하다. 특히, 느슨한 공통체.


녹색당 서울시 정책위원장으로 2014년 지방선거에서 서대문구 구의원 후보에 출마했다가 고배를 마신 이태영(30)은 "청년들에게 정치에 관심을 가지라고 하기 전에 그들이 사랑하고 정착할 수 있는 공동체를 만들어줘야 한다"라고 말한다. "원룸 사는 청년들은 선거 공보물을 보지 않는다. 지역에 대한 애정은 부동산이든 뭐든 자기가 소중한 것을 갖고 있어야 생긴다. 툭 하면 주소지를 옮겨야 하고 떠돌아다녀야 하는 청년이 지역에 애정을 가질 이유가 없다."
 _강준만 「청년이여, 정당으로 쳐들어가라!」


항상 그렇듯, 강준만의 책은 읽을만하다. 이번에도 통찰력 있는 분석과 설득력 있는 대안을 가지고 나왔다. 항상 그렇듯, 나는 설득당했다.


★★★★ 물갈이를 물갈이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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