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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태원댄싱머신 Jan 19. 2021

바나나맨!!!

 _박민규 「지구영웅전설」

"잘 주무셨나요 바나나맨?"
반가운 목소리의 아침인사가 내 등을 노크한다. 안 봐도, 간호사 아이리스임을, 나는 안다. 나로선 그리운 워싱턴 쪽의 억양에다, 흑인이며, 삼십팔 세의 미세스다.
"물론."
나는 또 한번 고개를 끄덕인다.
내 이름은 바나나맨. 이 지구를 지키는 슈퍼특공대의 일원이다.


주인공은 슈퍼히어로다. 정확히 말하면 슈퍼히어로의 친구. 가볍게 읽으면 한 없이 가벼운 이야기다. 슈퍼맨을 만나서 히어로가 된 이야기. 찬찬히 생각하며 읽으면, 유머가 아니라 풍자다. 코미디가 아니라 해학이다.



처음 주인공이 히어로가 되고 싶다고 했을 때, 슈퍼맨은 거절했다. 백인이 아니기 때문에. 나중에 배트맨의 설득에 의해 마지못해 동의한 후, 주인공에게는 바나나맨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겉은 노랗지만, 속 흰, 바나나맨.


"축하해. 이제 자넨 영웅이야." 슈퍼맨이 얘기했다.
"이게 현실일까?" 내가 소리쳤다.
"물론." 다시 슈퍼맨이 말을 이었다.
"너의 영혼은 백인이니까."


슈퍼맨을 사랑하는 소시민은 소박하게 산다. 우연한 계기로 각박한 삶을 벗어나게 된 주인공은 슈퍼히어로의 세계를 접한다. 구경한다고 말해도 좋다. 그렇게 살짝 맛본 슈퍼히어로의 세계는 현실세계와 찰싹 붙어있었다. 슈퍼맨은 미국이었다.



소설 속의 슈퍼맨을 통해서 미국을 볼 수 있는 것처럼, 소설을 덮으면, 미국을 통해서 슈퍼맨을 볼 수 있다. 슈퍼맨을 좋아하고 미국을 좋아하는 바나나맨은 껍질만 벗으면... 껍질만 벗으면... 슈퍼맨의 친구가 된다.



역시 박민규!! 하게 되는 소설. 그의 첫 작품이다. 발로 그린 듯한 표지에 발로 쓴 듯한 소설이다. 이걸 발로 썼단 말이야?! 놀라지 않을 수 없는 압도적 필력, 아니 발력! 박력 넘치게 전지구적 규모의 역사소설을 슈퍼맨과 바나나맨의 이야기로 그려버렸다. 아니, 발라버렸다.



★★★★★ 정의란 무엇인가. 미국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바나나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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