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지친다. 좀 편하게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잘 사는 집 아이들은 이렇게 빡빡하게 살지 않아도 될텐데, 아득바득 버티지 않아도 될텐데, 하는 생각은 하지 않지만, 이야기를 이어나가야 하니 일단 생각하는 걸로 한다. 그렇게 부러움의 대상이 되는 소위 있는 집 자식들은 좀 살만할까. 실은 그렇지 않다. 학벌사회의 엘리트 자리를 어떻게든 꿰어차야 하기 때문에, 있는 집 자식이건 없는 집 자식이건 죽어라 달려야 한다. 있는 집에서는 부모도 같이 달린다. 한 손을 잡고 끌기도 하고, 뒤에서 밀어주기도 한다. 그 이유가 뭘까. 내가 부자라면, 너무 그렇게 고생하지마, 내가 빌딩 하나 줄게. 회사 취직 안 해도 돼. 내가 하나 차려줄게, 하고 말할텐데 말이다.
우리는 수능을 실력의 결과, 노력의 객관적 지표로 본다. 대학입시는 반드시 공정하고 정의로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말 그럴까. 왜 서울대 연대 고대 등 소위 SKY라 불리는 명문대에는 서울 출신이 바글바글할까. 왜 그 서울 아이들은 다 팔학군일까. 의사 부모, 변호사 부모는 또 왜 그렇게 많을까.
우리가 간과하고 있던 사실이 하나 떠오른다. 수능시험과 부모의 경제력은 정비례한다는 사실이다. 이상할 거 하나 없다. 술 먹고 때리는 부모님이 없고, 책 읽을 수 있는 서재가 있고, 학원을 다닐 수 있고, 교재도 살 수 있고, 방학 때 어학연수도 다녀올 수 있고,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머리(총기)와 엉덩이(끈기)를 물려받은 아이는, 그렇지 않은 아이에 비해 시험성적이 높을 수밖에 없다. 너무 당연하다.
그런데도 우리는 수능 시험은 타고난 재능과 후천적 노력의 결과라 생각한다. 타고난 재능은 말할 필요 없이 상속받은 것이고, 노력은, 논란의 여지는 있지만, 역시 상속받은 엉덩이를 바탕으로 한 것 아닌가. 조금 과하게 말하면, 노력도 부모님이 준 거다. 그래도 우리는 수능은 실력이고, 대학도 실력이라 생각한다.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수시는 환경의 영향을 많이 받고 그에 비해 수능이 더 공정하다고 믿는다.)
그래서 이렇게 아득바득 하는 것이었다. 부모는 자식에게 단순히 부만 물려주려는 게 아니다. 정당함까지 물려주려는 것이다.
불평등한 사회에서 꼭대기에 오른 사람들은 자신들의 성공이 도덕적으로 정당하다고 믿고 싶어 한다. 능력주의가 원칙이 되는 사회에서는 승리자가 '나는 나 스스로의 재능과 노력으로 여기에 섰다'고 믿을 수 있어야 한다. 역설적으로, 이것이 바로 입시 부정 부모들이 자녀에게 선물하려던 것이었다. _마이클 센델 「공정하다는 착각」
학벌은 혼자의 힘으로 얻어낼 수 있는 게 아니다. 물려 받은 머리와 엉덩이, 재정적 / 문화적 지원, 거기에다 행운과 우연적 요소까지 필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단 학벌을 얻어내기만 하면, 정당하게 실력을 평가받은 것처럼 여겨진다. 그리고 그걸 공정이라 부른다.
「공정하다는 착각」을 읽었다. 마이클 아저씨의 전작에 비해 지루하고 어려웠다. 미국 정치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나오고, 별로 중요해 보이지 않는 곁다리도 많이 나와서, 읽는데 시간이 좀 걸렸다. 그래도 좋았다. 능력주의가 정말 공정한지, 부작용은 무엇인지 설명하고, 철학자/경제학자도 나온다. 맨큐, 하이에크, 나이트, 롤스, 헤겔을 등장시켜 개념적 차이를 설명한다. 나름의 대안도 제시한다. 나는 동의한다. 읽을 만한 책이다.
★★★★★ 공정함의 덫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벗어나는 것도 벗어나지 못하는 것도 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