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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태원댄싱머신 Feb 02. 2021

우리는 사고뭉치를 좋아한다

 _나쓰메 소세키 「도련님」

다자이 오사무를 좋아한다. 엄청 우울한 척하는 아이 같은 느낌이랄까?가짜 우울은 아니지만 그래도 귀여움을 장착하고 있는 우울함이다. 일본 작가는 다 비슷할 거라는 근거 없는 편견을 가지고 나쓰메 소세키의 책을 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약간 실망했다. 우울이 조금도 없다! 통쾌하고 시원하다. 귀엽고 재미있다는 점은 다자이 오사무와 비슷하다. 동화 같은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좋아할 만하다.



성질 급한 사고뭉치 주인공은 도련님이라 불렸다. 자신을  돌보던 가정부도 있었다. 집을 정리하고 다른 지역으로 떠나서 학교 선생으로 일하며 벌어지는 일을 그린 소설이다. 주변 사람들을 관찰하기도 하고 말썽을 일으키기도 한다. 언제나 자신을 돌보던 가정부를 그리워한다.


감당


주인공은 결과를 감당하는 인물이다. 끊임없이 장난을 치고 사고를 치지만, 절대 피하지 않는다. 오히려 벌이 있기 때문에 장난을 친다고 생각할 정도다. 간헐적으로 곤경에 처하지만, 밉지 않다.



손해


계속해서 손해만 본다. 참아야 할 말을 참지 않고, 도발에는 무조건 응한다. 그래서 득 될 것 하나 없지만, 천성이 그런 것이니 어쩔 수 없다. 그래서 밉지 않다.


사고뭉치는 똑똑하지 못해서 사고뭉치다. 실수하고 손해보고 그러면서도 당당한 모습을 보면 미워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나에게 실수하면 이야기가 다르다. 그러면 민폐. 극혐!) 반면에 사고뭉치면서 잔뜩 주눅 들어있는 모습을 보인다면 미워하게 된다. 처음에는 위로해주고 싶다가도 나중에는 한심하게 여기게 된다. 결국 스스로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가 타인에게도 영향을 미치는 듯하다.


도련님의 편지를 받고 나서 곧장 답장을 쓰려고 했는데 어쩌다 감기에 걸려 1주일 정도 누워만 있었기 때문에 그만 답장이 늦어졌어요. 죄송합니다. 게다가 요즘 젊은 여자들처럼 능숙하게 쓸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이렇게 서툰 솜씨로 쓰려니 힘이 들어서 조카에게 대신 좀 받아 적으라고 하려다가 모처럼 도련님꼐 쓰는 편지인데 제 손으로 직접 쓰지 않으면 죄송스럽다고 생각해서 부끄럽지만 이렇게 적습니다. 먼저 대충 할말을 쓴 다음 다시 정리를 했는데, 정리하는 데 이틀이 걸렸고 처음 쓸 때 나흘이 걸렸으니 읽기 힘드시겠지만 정성을 봐서 끝까지 읽어주세요.

이런 인사말로 시작해서 넉 자(약 1미터20센티미터)는 족히 넘을 두루마리 종이에 별별 이야기들이 다 쓰여 있다. 읽기가 힘든 편지는 5엔을 주고 읽으라고 해도 안 읽겠지만 기요의 편지만은 처음부터 꼼꼼하게 읽어나갔다.



오매불망


이런 사고뭉치를 가정부는 마냥 좋아한다. 큰 사람이 될 거라고 근거 없는 기대를 쏟아붓는다. 주인공은 이해하지 못한다. 독자도 이해하지 못하겠다. 하지만 기대는 좋은 결과를 만든다. 주인공이 결국 돌아오는 것도 가정부(기요)의 품이다.


주인공은 종종 기요를 생각한다. 그것만으로 힘을 받는다. 근거 없는 기대가 주는 힘이다. 나도 기요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밑도 끝도 없이 여자친구를 믿어주고 밀어주고 싶다. 여자친구가 어느 순간 힘들 때, 나를 떠올리면서 웃을 수 있다면 좋겠다. 지금도 사실상 여자친구를 모시고 있으니, 삶은 기요 다를 바 없다.


죽기 전날, 나를 불러서 "도련님 부탁이 있는데요, 내가 죽으면 도련님 다니시는 절에다 묻어주세요. 무덤 속에서 도련님 오시길 기다리면 좋겠어요" 했다. 그래서 기요의 묘는 고비나타에 있는 요겐지에 있다.


책의 마지막은 그녀에 대한 후일담이다. 변함없는 그녀의 모습에, 책을 덮으면서도 마음이 따뜻했다.


★★★★★ 우리는 스스로 손해보고 감당하고 당당한 사고뭉치를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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