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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태원댄싱머신 Feb 08. 2021

행운은 세트로

_최민석 「꽈배기의 맛」

자본주의적 소비의 핵심은 세트다. 기능보다 본질보다 무엇보다 소유욕을 자극하는 형태. 그게 세트다. 자본주의에 잘 적응해서인지, 꼭 다 필요하지 않아도, 혹은 전혀 필요하지 않아도, 일단 세트면 구매하고 보는 편이다. 그래서 집에 「태백산맥」 전집이라거나 「20세기 소년」 전집 등이 뜬금없이 책장을 차지하고 있다.


가끔은 세트인줄 르고 사는 경우도 있다. 한권만 샀는데, 알고보니 세트여서 울며겨자 먹기로 나머지 책들도 사들다. 「셰익스피어 5대 비극」은 두꺼운 책이어서 욕하면서 읽었는데, 알고보니 희극도 있었다. 「셰익스피어 5대 극」도 구입. 「우울한 날엔 니체」를 재미있게 읽었는데, 알고보니 세트였다. 「무기력한 날엔 아리스토텔레스」, 「괴로운 날엔 쇼페하우어」도 차례로 구했다. 장강명의 「한국이 싫어서」는 이쁘다고 샀는데, 민음사의 「오늘의 젊은 작가」 시리즈였다. 시리즈는 같이 모아놓아야 이쁘니, 어쩔 수 없이 하나둘 사들이고 있는데, 이미 스무권을 구매했지만, 시리즈는 끝날 기미가 안 보인다.


「꽈배기의 맛」도 비슷한 연유로 구매하게 되었다. 「꽈배기의 멋」을 읽었는데, 알고보니 이 책도 세트였던 것. 고민없이 구매했다.



이 책은 개정판이다. 원래 제목은 「청춘, 방황, 좌절, 그리고 눈물의 대서시시」. 작가가 마음대로 써도, 출판사에서 팔리는 제목으로 바꿔줘야 하는데, 그게 안 됐나 보다. 다행히 이번에는 잘 만들어진 제목으로 보인다.



간혹 견딜 수 없이 오므라이스가 먹고 싶어진다. 어느 정도냐면 가히 신체기관 어딘가가 잘못돼 나타나는 병리적 현상이라 할 정도다. '오므라이스, 오므라이스'라고 혼자서 중얼거리며 거리를 헤매거나, 노란 옷을 입은 사람을 보면 계란 지단인 양 착각하고 쫓아가게 된다.
 _최민석 「꽈배기의 맛」
어찌됐든 네이버에서 연재하는 <지식인의 서재>를 즐겨본다. 가끔 '허, 이 사람도 지식인이었나' 하며 의표를 찔린 기분이 들 때도 있지만, 사실 지식인이란 개념은 충분히 광의적이기에 일단은 그냥 본다. 그런데, 계속 보다가 든 생각은 수십회가 넘도록 대부분의 출연자들이 서재에서 촬영을 했다는 사실이 조금 단조롭게 느껴졌다는 것이다. 가령, 내 서재는 내 속에 있는 것이요, 라며 대장내시경 화면을 보여주며 말하다든지, 서재란 무용한 것이지요. 그 또한 지적 허영 아니겠습니까. 라며 책을 불태우고는 재를 강가에 뿌리며 인터뷰를 한다든지, 혹은 종이는 재가 되어 바람 속에 흩어졌지만, 내 마음속에는 여전히 문장들이 꿈틀거리지요, 라고 말하면 멋지지 않을까.
 _최민석 「꽈배기의 맛」
게다가 외야의 좌석은 주술적 힘이 있어, 그 자리에 앉으면 누구나 거친 말들을 쏟아내게 된다. 마치 이성을 마비시키는 예비군복처럼 강력한 마성을 가지고 있다. 외야석에 앉는 순간 그라운드가 작아 보이고, 선수들도 작아보이고, 그런 탓에 확대된 자아에 의존해 거친 말들을 마구 쏟아내는 것 같다. 실제로 그날은 단체 견학 온 여중생 한 명이, 한때 국가대표였고 지금은 프로데뷔 15년차인 선수에게 "2군에서나 썩어버려라"고 잔뜩 취한 아저씨처럼 고함을 질러댔다. _최민석 「꽈배기의 맛」



★★★★ 어쩌다보니 샀지만, 행운은 원래 그렇게 흘러들어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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