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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태원댄싱머신 Feb 15. 2021

아직 사용하지 않은 위로

 _송아람 「두 여자 이야기」

나는 위로가 필요없다. 우울감을 느껴본 적도 없고, 마음에 병이 들었다고 생각해본 적도 없다. 몸은 허약해도 마음이 튼튼한 편이라 생각했다. 힐링이니 위로니 하는 것들은, 몸보다 마음이 허약한 사람들에게 양보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운전하는 게 직업이다. 내일은 또 장거리 운전을 할 생각을 하니 마음이 착잡했다. 중간에 쉬지 않으면 허리도 아프고 피곤할까봐 걱정이 되었다. 일찍 자려고 누워서 잠시 책을 꺼냈다. 「두 여자 이야기」다. 우연히 책장에서 꺼내어 펼친 책에서 위로를 받았다.



힘들게 사는 두 여자 이야기다. 힘들다는 형용사는 빼도 좋다. 삶은 원래 힘든 것이고 이 둘에게도 예외는 아니다. 한 여자는 서울에 산다.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리면서 디자인 일도 한다. 다른 한 여자는 대구에 산다. 작가가 되겠다는 꿈으로 상경해서 잡지사에서 일한다.


마지막 이야기를 하면 스포일링이 될지 모르겠지만, 주인공이 갑자기 유령이라는 게 밝혀진다거나, 절름발이가 갑자기 걷게 된다는 반전 결말은 아니기 때문에, 조심스럽게 밝힌다. 마지막 장면은 지하철이다. 퇴근하는 지하철에서 조용히 혼잣말을 한다.


할매...
서울도 별거 없네...
내 한 개도 안 힘들다...
진짜다.
 _송아람 「두 여자 이야기」


말하는 여자의 얼굴에 힘든 내색은 없다. 그냥 괜찮다 말하며 꿋꿋이* 살아가는 여자의 모습에, 나는 왠지 모르게 찌잉했다.


 *꿋꿋이 : 꾿꾿이가 아닌가 생각했는데, 꿋꿋이가 맞다. 꼿꼿이와 같은 의미다.



서점은 힐링책 홍수를 맞이하고 있다. 가끔 서점을 들르게 되면, 나는 구석까지 들어가야 한다. 범람하는 힐링책에 밀려서 내 취향의 책은 하류까지 떠내려 갔기 때문이다.


괜찮아

너는 자격이 있다

못해도 좋아

네 잘못이 아니다

그럴 수 있지

떡볶이 먹고 싶어

멈추면 비로소 어쩌구저쩌구


위로를 가장한 의미없는 이야기에는 아무런 미동도 없던 내 안면근육이 미세하게 떨리기 시작하면서 눈물이 나면 어떡하지 호들갑을 떨 정도는 아니었지만, 그냥 마음속으로 찌잉했다.


위로를 줄 수 있는 사람은 괜찮다고 말하지 않는다. 남의 사정도 모르면서 함부로 꺼낸 괜찮아는 조금도 괜찮지 않다. 나와 같이 절뚝이면서 걸어가는 옆사람만이 위로가 된다. 김난도가 아무리 노래*를 잘 불러도 마음을 움직일 수 없는 이유다.


 * 전에 티브이에서 김난도가 나온 걸 봤다. 강연 마지막에 임재범의 노래를 부르는데, 깜짝 놀랐다. 너무 잘 부르고, 시원시원하게 부른다. 역시 트렌디하다.



위로를 가장한 책들에서 받지 못한 찌잉을 이 책에서 받았다. 나는 정말 위로가 필요없는 게 맞을까. 어쩌면 나는 위로를 잘 사용하지 못한 것은 아닐까. 이상국 시인의 '사용하지 않은 슬픔'이라는 구절이 생각난다.



저는 늘 내가 아니고 싶어했으나
내가 아닌 적도 없었던 마음이여
그래도 아직 사용하지 않은 슬픔이 있고
저 산천에는 기다리는 눈비가 있는데
 _이상국 「마음에게」


★★★★★ 아직 사용하지 않은 위로가 이 책에 들어있다. 책을 펴고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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