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오찬호 「그 남자는 왜 이상해졌을까?」
자기계발과 성공의 간격이 이처럼 멀리 떨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럼에도', 아니 '그렇기에' 강조되는 것은 늘 자기계발이라는 점입니다. 평생 '극복만 주문'받는 개인을 만들어버리는 것입니다.
_오찬호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
이들의 자기계발은 매우 역설적이다. 취업되기 위해 그 힘든 자기계발을 하는 건데, 결과적으로는 취업과 상관도 없는 단순한 '상대적 비교에서 오는 자기만족'을 위해 자기계발을 하고 있는 셈이니 말이다.
_오찬호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
이십대들에게 개인의 고통은 그보다 더한 고통을 이겨낸 누군가를 본받으면서 마땅히 참아야 할 것이 되어버렸다. 흥미로운 건, 이십대들은 한편으론 취업을 못 하고 있는 자신들의 고통을 알아 달라고 호소하면서 또 한편으론 비정규직 노동자의 정규직 전환 요구에 반대한다는 점이다. 이런 이율배반적이 또 어딨는가.
_오찬호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
아버지의 학력은 아버지의 소득을 결정짓고, 그 소득은 자녀가 어떤 교육을 받는지 결정하고, 이는 자녀의 '꿈'으로 이어진다.
_오찬호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
부당한 대우 속에서도 오랫동안 군소리하지 않고 버틸 수 있는 자가 기업의 인재상이 되면서 과거의 '군사 문화'는 죽지 않고 확대 재생산된다. 이 공간에서 '사회화'가 되는 남자는 독특해지고 그 남자들이 쥐어 잡고 있는 사회는 '일상의 군대화'가 만연해진다.
_오찬호 「그 남자는 왜 이상해졌을까?」
젊을 때 '눈 딱 감고' 2년만 참으면 평생을 '대한민국 남자'로서 프리미엄을 누르게 된다는 말이다. 군대에서 적응 잘한 사람은 대한민국의 일상에도 무난히 적응할 수 있다.
_오찬호 「그 남자는 왜 이상해졌을까?」
이들이 말하는 군대에서 '정신 차린다는 것'은 그만큼 군대가 이상한 곳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군대가 아닌 곳'이 왜 그렇게 소중한지 정신이 번쩍든다는 의미다.
_오찬호 「그 남자는 왜 이상해졌을까?」
그런데 신기하게도 제대를 하면서 남자들은 그 시절에 대해 '지랄' 그 이상의 것이 있었다고들 말한다. 주변에서 '진짜 남자', '리더십이 있다'는 식으로 '예비역'을 대하니 어느 남자도 "솔직히 군대는 그런 것과는 전혀 상관없는 곳"이라고는 차마 말하지 못한다.
_오찬호 「그 남자는 왜 이상해졌을까?」
한국의 남자들은 '자본주의 노동 세계'에 본격적으로 발을 딛기도 전에 학교와 군대에서 이미 자본가가 '부려먹기에' 최적화된다는 말이다. 즉, 한국의 남자는 어떤 사회에나 있는 남자와는 '다른' 남자다. 그러니 '원래' 그런 남자는 없다.
_오찬호 「그 남자는 왜 이상해졌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