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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태원댄싱머신 Feb 19. 2021

남자의 반성

 _오찬호 「그 남자는 왜 이상해졌을까?」

오찬호는 반성의 귀재다. 전작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에서 사실 우리는 차별에 찬성해왔구나. 하며 독자를 반성하게 만들았다. 물론 나는 아니다. 나는 왠만해선 반성하지 않는다.


자기계발과 성공의 간격이 이처럼 멀리 떨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럼에도', 아니 '그렇기에' 강조되는 것은 늘 자기계발이라는 점입니다. 평생 '극복만 주문'받는 개인을 만들어버리는 것입니다.
 _오찬호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
이들의 자기계발은 매우 역설적이다. 취업되기 위해 그 힘든 자기계발을 하는 건데, 결과적으로는 취업과 상관도 없는 단순한 '상대적 비교에서 오는 자기만족'을 위해 자기계발을 하고 있는 셈이니 말이다.
 _오찬호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
이십대들에게 개인의 고통은 그보다 더한 고통을 이겨낸 누군가를 본받으면서 마땅히 참아야 할 것이 되어버렸다. 흥미로운 건, 이십대들은 한편으론 취업을 못 하고 있는 자신들의 고통을 알아 달라고 호소하면서 또 한편으론 비정규직 노동자의 정규직 전환 요구에 반대한다는 점이다. 이런 이율배반적이 또 어딨는가.
 _오찬호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
아버지의 학력은 아버지의 소득을 결정짓고, 그 소득은 자녀가 어떤 교육을 받는지 결정하고, 이는 자녀의 '꿈'으로 이어진다.
 _오찬호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


이번책 「그 남자는 왜 이상해졌을까?」에서는 날카로운 반성의 칼날이 저자 자신을 향한다. 스스로 밝히듯 그는 마초에서 페미니스트로 전향했다. 성경 책을 덮고 머리 깍은 셈이다.  스스로 돌아보며 써내려간 글이지만, 읽은 사람도 반성하게 된다. 내 이야기는 아니라고 딱 잘라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내 이야기는 아니다.) 열변을 토하는 저자의 모습은 거울에 비친 우리 모습 같다. 내가 쓰지 않은 내 일기장이랄까. 솔직한 이야기는 머리를 긁적이게 한다.



반성을 종용하는 메지는 반발심을 불러일으킨다. 페미니즘이 대표적이다. 오찬호는 남성의 입으로 남성을 비판하기 때문에 그 반발심을 조금 누그러뜨릴 수 있고, 또 스스로를 주요 소재로 삼기 때문에 다신 한번 반발을 약화시킨다. 그렇다고 악플이 안 달린다는 건 아니다. 실제로 군대라는 성역을 건드렸다는 이유로 어마어마한 악플이 달렸고, 악플의 일부를 책에서 공한다.



한국의 권위적인 문화는 군대에서 기인한다. 이성적으로 이해가 안되는 부분은 군대식으로 찍어누른다. 일상의 군대화다.


부당한 대우 속에서도 오랫동안 군소리하지 않고 버틸 수 있는 자가 기업의 인재상이 되면서 과거의 '군사 문화'는 죽지 않고 확대 재생산된다. 이 공간에서 '사회화'가 되는 남자는 독특해지고 그 남자들이 쥐어 잡고 있는 사회는 '일상의 군대화'가 만연해진다.
 _오찬호 「그 남자는 왜 이상해졌을까?」


군대 갔다온 사람들은 습관적으로 군대 욕을 한다. 하지만 피해를 보기만 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반대다. 적지 않은 프리미엄을 누리고 있다.


젊을 때 '눈 딱 감고' 2년만 참으면 평생을 '대한민국 남자'로서 프리미엄을 누르게 된다는 말이다. 군대에서 적응 잘한 사람은 대한민국의 일상에도 무난히 적응할 수 있다.
 _오찬호 「그 남자는 왜 이상해졌을까?」


군대는 이상한 곳이다. 뭘 배우는 곳이 아니라, 사람되는 곳이 아니라, 착취당하는 곳이다.


이들이 말하는 군대에서 '정신 차린다는 것'은 그만큼 군대가 이상한 곳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군대가 아닌 곳'이 왜 그렇게 소중한지 정신이 번쩍든다는 의미다.
 _오찬호 「그 남자는 왜 이상해졌을까?」


제대하기 전까지는 전역일자만 기다리며 일분에 한번씩 군대욕을 하던 사람도 제대하면 달라진다. 철이 들었다는 둥, 사회생활을 배웠다는 둥 달라진 척한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제대를 하면서 남자들은 그 시절에 대해 '지랄' 그 이상의 것이 있었다고들 말한다. 주변에서 '진짜 남자', '리더십이 있다'는 식으로 '예비역'을 대하니 어느 남자도 "솔직히 군대는 그런 것과는 전혀 상관없는 곳"이라고는 차마 말하지 못한다.
 _오찬호 「그 남자는 왜 이상해졌을까?」


그렇게 달라진 남자는 부려먹기 좋은 남자라 할 수 있다. 문제가 있어도, 해결하고 개선하기보다, 버틴다.


한국의 남자들은 '자본주의 노동 세계'에 본격적으로 발을 딛기도 전에 학교와 군대에서 이미 자본가가 '부려먹기에' 최적화된다는 말이다. 즉, 한국의 남자는 어떤 사회에나 있는 남자와는 '다른' 남자다. 그러니 '원래' 그런 남자는 없다.
 _오찬호 「그 남자는 왜 이상해졌을까?」



페미니즘 도서를 많이 읽어서 여성학 책은 이제 다 뻔하다고 느끼는 사람이라면 읽어보면 좋다. 남자라면 더 추천이다. 남성 독자는 거울 앞에 서게 된다. 민망하면서도 재미있다. 남을 이해하는 것보다 나를 인정하는 게  원래 더 어렵다. 그 어려움을 이해하고 쉽게 쓴 배려가 느껴진다. 체계적으로 정리된 논문이라기 보다는 가볍게 풀어쓴 강의록 같다. 중학생도 이해할 수 있을만큼 쉽고 가볍게 썼다. 예시도 많고 에피소드도 많다. 그의 강의는 분명 이렇게 쉽고 재미있을 것 같다.


★★★★★ 거울 앞에 선 한국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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