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 먹던 사람이 갑자기 먹을 수 있다?!
나는 고수를 잘 먹는다. 당연히 처음부터 잘 먹었던 건 아니고, 지난한 훈련의 결과다.
한창 패기 넘치던 시절, 중국에서 식당을 했다. 새벽 시장에 나가 장을 봐오면, 중국인 주방장이 한국 음식을 만들어 팔았다. 드라마 별그대*가 한창 인기 있었고, 치맥이 중국에서 인기라는 뉴스를 봤지만, 나는 여전히 패기가 넘쳤고 식당에는 손님이 없었다.
*별그대 : 「별은 내가슴에」 아니다. 「별에서 온 그대」다.
지루한 하루 영업을 마무리하면, 나는 (너무 매출이 적어서) 쓰린 속을 부여잡고, 근처 포장마차로 갔다. 중국에서는 싸오카오라고 하는 꼬치를 포장마차에서 파는데, 이게 아주 중독적이다. 한국에서 먹는 양꼬치 맛을 생각하면 된다. 딱 그 느낌이다. 꼬치를 구우면 어마어마한 연기가 발생해서 불이 난게 아닌가 걱정이 들 정도다. 뭉개뭉개 피어오르는 연기 속에서, 버섯도 먹고 두부도 먹고 내가 좋아하는 야채와 고기를 골라 먹는데, 항상 고수도 집었다. 맛없어 하면서도 끈질기게 매일 먹었다. 패기가 넘쳤다. 밤늦게 까지 부어라마셔라 밤거리를 연기로 뒤덮으며 고수를 냠냠쩝쩝 먹고 잠이 들면, 아침엔 다시 (이번엔 다른 이유로) 쓰린 속을 부여잡고 출근하는 식이었다. 식당은 여전히 한산했고, 나는 패기와 쓰린 속으로 버텼다. 고수도 매일 먹었다. 자금과 패기는 몇 년 안가 결국 바닥을 보였다. 처음 맛 본 바닥은 꽤 썼다. 상대적으로 덜 써서인지 고수는 먹을만해졌고, 얼마 후 나는 한국으로 돌아왔다.
예컨대 여행을 떠나기 전엔 절대 맨발로 걷지 않던 사람이 맨발로 걷는다든지, 어깨를 부딪쳐도 계속 길을 가던 사람이 사과를 하기 시작한다든지, 책을 읽지 않던 사람이 책을 읽기 시작한다든지 하는 작은 변화들이 생기기 시작한다. 그것이 쌀국수를 먹지 않았던 사람이 쌀국수를 먹기 시작했다는 사소한 차이라 해도 상관없다. 일상에 생긴 작은 차이만큼 그 사람의 세계는 조금씩 넓어지는 것이다.
_최민석 「꽈배기의 맛」
한국에 돌아오니 식문화가 조금 달라져있었다. 당연하다는 듯이 쌀국수에 고수를 넣어먹는다. 해외여행이 흔해져서다. 고수를 못 먹으면 이국적인 분위기에 적응하지 못하는 느낌, 심지어 약간 촌스러운 시선을 받기도 한다. 청국장도 홍어도 잘 먹는데, 겨우 고수 하나 못 먹는다고, 입이 짧다고 오해받거나, 해외에서 학창시절을 보냈는데, 겨우 고수 하나 못 먹는다고, 여권이 없는 걸로 오해받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이들에게 추천한다. 중국에서 식당을 몇년 하고 오시라. 고수를 먹을 수 있게 될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