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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태원댄싱머신 Feb 23. 2021

한국인에 대하여

 _강준만 「한국인 코드」

사람마다 나름의 틀을 가지고 있다. 이걸로 세상을 바라본다. 그게 색안경일 수도 있고, 편견 없는 관용일 수도 있다.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친구들을 만나고, 크고 작은 경험을 하면서 틀을 만들어 간다. 내 틀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건 강준만이다. 강준만의 틀로 세상을 본다. 나는 강준만주의자다.


강준만은 그간 지을 통해서 지방 문제, 취업 문제, 불평등 문제 등을 다루었는데, 이번에는 아예 대놓고 한국인을 다루고 있다. 이거 하나만 읽으면 한국인에 대한 틀이 대략 만들어지는 셈이다. 이 책을 읽기 전에는 한국인의 틀이 없을까? 나는 그랬다. 한국 · 중국  · 일본에 대해 명확하게 설명하고 비교할 수 없었다. 저자에 의하면 그 이유는 간단하다. 한국인은 한국을 모른다. 물 속에 있는 물고기처럼 말이다.


물고기는 물을 모른다. 그물이나 낚시에 걸려 물 밖으로 나오게 될 때 비로소 물을 알게 된다. 같은 이치로 한국인을 가장 모르는 사람은 한국인이라는 역설도 가능해진다. 자신을 알고 가족을 알고 친구를 알기 때문에 한국인을 가장 잘 안다고 생각하겠지만, 그래봤자 아는 한국인은 수백 명 수준이다. 마당발을 자랑해도 수천 명이다. 그런 개인 접촉을 통해선 한국인의 실체를 알기 어렵다. 여기서 말하는 한국인은 수백만에서 수천만에 이르는 대집단으로서의 한국인이다. 대집단이 되는 과정에서 다양한 '화학반응'이 일어나기 때문에 개별적 특성이 곧 전체의 특성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



총 10가지의 특성으로 나눠서 설명한다. 재미있는 한두 문단만 소개하겠다.



제1장 너나 잘하세요

 - 자기 방어로 기제로서의 냉소주의


극심한 내부 분열과 충돌로 점철된 해방정국에서 민생에 허덕이던 민중이 냉소 이외에 무엇으로 안전을 도모했으랴, 6 · 25 전쟁 중엔 정부가 서울시민을 속이면서까지 도망가기에 바빴고 돌아와서는 피난을 못 간 이른바 '잔류파'를 처단하기에 바빴다.
냉소주의는 늘 최악을 준비하는 삶의 자세였다. 공적 영역엔 불신을 보내되, 사적 영역에선 신뢰할 수 있는 연고를 키우고 자녀교육에 목숨을 거는 처세술이었다. 냉소의 사전엔 실망과 좌절이 없다. 배신을 당할 일도 없고 상처를 입을 염려도 없다.


제2장 빨리빨리

 - 역동성과 조급성이라는 두 얼굴


이와 관련, 부산대 사회학과 교수 박재환은 '속전속결주의'라는 말을 썼다. 그는 현재 한국 사회의 일상생활의 원리로 작용하고 있는 속전속결주의는 아직도 절차와 신용과 게임의 룰이 정착되지 않은 사회적 상황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국가를 비롯한 공공의 영역에서 결정한 정책이 장기적으로 집행되기보다 반대의 여론이나 정치적 필요에 의해 몇 년 만에 바뀌는 사례는 부지기수로 많았기 때문에 새로운 정책에서 유리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한시바삐 그 좋은 기회를 이용하려 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조금만 늦어도 그런 조건은 어느새 변경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한국인들은 어떤 사회적 문제를 직접 해결하려 하기보다는 '빨리빨리' 이뤄지는 변화를 통해 그 문제를 건너뛰거나 비교적 사소하게 만드는 방식을 선호한다. 그걸 의식하건 의식하지 못하건 말이다. 그래서 책임 규명에도 소홀할 수밖에 없으며, 눈치 빠른 사람이 출세한다. 눈치는 한국인의 숙명이다. 기회주의는 한국인의 삶의 절대적 조건이다. 그러나 너무 탓하진 말자. 탓하지 않는 게 한국적 박애의 표현일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제3장 배 아픈 건 못 참는다

 - 한국형 평등주의의 괴력


한국인은 동질성과 밀집성으로 인해 강한 평등주의를 갖고 있는 건 분명한데, 그건 개인 차원에서만 발휘될 뿐 사회정책 차원에서는 좀 달리 볼 필요가 있다는 뜻이다.
고밀집 사회는 이웃과의 비교를 강요한다. 이웃을 의식하지 않고선 단 한시도 못 살게 만든다. 그 비교는 필사적이다. 행복은 비교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제4장 최고 · 최대 · 최초

 - 자존감을 위한 투쟁


그러나 교회는 성공했다. 요즘 서양에서 유행하고 있는 이른바 '메가처리(mega church)'의 원조는 한국이다. 단일교회 신도 수 세계 1위의 교회는 한국에 있으며, 세계 10대 교회 중 4개, 세계 50대 교회 중 23개가 한국에 있다.
비교 대상에 문제가 있다. 신문도 좋고 한자들의 논문도 좋다. 국가간 비교 사례를 보라. 예외 없이 선진국과의 비교 일색이다. 한국과 비슷한 수준의 나라와 비교하는 법은 없다. 비교 대상은 죽으나 사나 미국, 일본, 유럽이다. 그것에 문제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제공되는 비교 연구 자료가 그것밖에 없으니 그런 경향을 따라갈 수밖에 없다.


제5장 정(情)

 - 가족주의 · 정실주의 · 부정부패


중앙대 심리학과 교수 최상진은 정은 사회적 인간관계에서 관여된 사람들 사이에 애착과 친밀감을 만들어 주는 사회관계적 원자재라고 정의했다. 서양의 사회관계를 개인주의적이라고 할 때 한국의 그것은 관계주의적이며, 한국인은 타인과의 관계에서 자신을 규정하며 자신의 가치를 발견한다는 것이다.
그렇다. 한국인들은 법의 의해 적발돼 공개된, 큰 부정부패에 대해서만 분노할 뿐 부정부패 그 자체에 대해 분노하는 건 아니다. 한국에서 부정부패에 대한 분노는 내 처지에 비추어 본 상대적 박탈감에서 비롯되는 것일 뿐이다.
한국의 정 문화를 예찬하는 건 좋은 일이지만, 한번쯤 그 그늘도 생각해 보면서 형평의 원리를 발휘해 보는 것도 좋겠다. 따지고 보면 연고주의니 패거리주의니 하는 것도 정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게 아닌가.


제6장 6 · 25

 -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6 · 25 전쟁은 이 세상에 믿을 건 나와 내 가족밖에 없다고 하는 극단적인 가족주의를 강화시켰다. 국민을 버리고 달아났으면서도 나중엔 '부역자'를 처단하기에 바빴던 정부는 기만과 폭력의 주체로 각인되었다.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 파벌 중심으로 이루어질 때에 '중간'이란 입지는 더욱 존재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중간을 선택하는 자들은 경쟁에서 밀려날 수밖에 없었다.


제7장 소용돌이

 - 쏠림의 축복과 저주


이른바 '서울공화국', '서울대의 나라', '삼성의 나라' 등으로 대변되는 1극체제와 그에 따른 부작용이 쏠림의 저주라면, 세계에서 가장 빠른 경제발전과 민주화는 쏠림의 축복일 것이다. 한국인은 새 것이라면 환장하고 유행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줏대 없는 민족이라고 비판할 수도 있겠지만, 그건 달리 보면 한국인이 구습 타파에 능하고 새로운 도전을 사랑하는 진취적인 민족이라고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도 있는 것이다.
한국적 관용은 주로 망각에 의한 관용이다. 미움도 증오도 복수도 없다. 좋긴 하지만, 동시에 책임규명도 없다는 점이 문제다.


제8장 서열

 - 관존민비 · 출세주의 · 입장주의


강력한 개발독재를 위해선 그 정도의 부정부패는 불가피했다는 주장이 있을 수 있다. 또 일부 서양 학자들은 개발도상국가의 부정부패가 관료적 번문욕례(red tape)나 경직성을 뛰어넘어 신속한 의사결정 및 프로젝트의 수행을 가능케 함으로써 경제성장에 도움을 줄 수도 있다는 이론을 제시했다.
한국인의 그런 특성은 타인 지향적 인정 욕구 때문일 것이다. 자기 자신보다는 남들과의 관계에서 삶의 의미와 보람을 찾는다는 뜻이다. 그래서 서열을 매겨야만 직성이 풀린다. 한국은 다른 나라들과는 달리 워낙 동질적 집단이기 때문에 다른 '구별 짓기'의 수단이 없어 더욱 서열에 매달리는 건지도 모른다. 그래서 대학들은 '고교 등급제'를 저질렀고, 기업들은 '대학 등급제'를 열심히 저지르고 있다.


제9장 아버지

 - 생존을 위한 지도자 추종주의


이광훈은 1945년 8월 16일 서울 종로 네거리 등에는 "근로대중의 위대한 지도자 박헌영 선생은 어서 나와 우리를 지도해 달라!"며 박헌영의 등장을 촉구하는 벽보들이 나붙기 시작했다고 지적하면서, 사회가 혼란에 빠지면 사람들은 구세주가 지평선으로부터 홀연히 모습을 나타내어 사태를 수습해 주기를 기다리는 '메시아 콤플렉스'에 빠져든다고 했다.
묘한 건 지도자들 스스로 민중은 늘 피해자라는 식의 민중예찬론을 폄으로써 민중의 면책심리를 강화하는 데에 일조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도자 추종주의와 민중예찬론이 만나면 어떻게 되는가? 민중은 늘 피해자라는 의식은 '엘리트 물갈이'에 열광하게 만들지만, 그 열광의 시간은 짧을 수밖에 없다.


제10장 목숨 걸고

 - 단기적 극단, 장기적 중용


한국 특유의 '쏠림 문화'는 사실상 '극단주의 문화'와 통하는 것이고, 그 덕분에 한국은 여러 영역에서 많은 세계 최고기록을 수집하게 되었다.
노무현이 정치를 화려한 스펙터클로 만들어 국민에게 재미를 선사한 공로는 높이 평가할 만하다. 정치가 이종격투기라면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야 마땅하겠는데, 그럴 수만은 없는 게 안타깝다. 지도자의 목숨 걸기는 그 어떤 장점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를 후퇴시키는 '영웅주의'라는 치명적인 결함을 안고 있으니 그게 문제다.
앞서 지적했듯이, 세계사를 살펴보면 중용보다는 '극단주의'를 택한 나라가 성공했으며, 극단주의로 인한 파멸마저도 또 다른 극단주의로 극복한 사례들이 많다.
지도자의 리더십 역할을 충분히 인정하되 크게 보면 그런 지도자가 나오게 된 것도 시대적 상황, 즉 동시대 대중의 정서구조에 기인한다고 보는 것이다. 물론 지식인도 자신의 신념을 갖고 독창적인 주장을 제기할 수도 있지만, 그것이 영향력을 갖는 건 동시대 대중의 정서구조에 달려 있다는 점에서 시대적 상황의 산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 물고기는 절대 알 수 없는 물. 나는 절대 알 리 없는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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