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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태원댄싱머신 Mar 19. 2021

문에서 나가려는 자, 문으로 나오려는 자

_박민규 「아침의 문」

일방통행 도로에 잘못 들어섰다. 빌라가 줄지어 늘어선 길 한쪽에는 마찬가지로 차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다. 한대만 겨우 지나갈 수 있다. 일방통행 표시를 보지 못해 들어서버렸다. 뜬금없이 역주행이다. 잘못을 인지하고, 제발 다른 차를 만나지 않기를 기도했으나, 당연하다는 듯이 맞은편에 차가 달려온다. 순간 차를 버리고 도망가고 싶었다. 골목은 좁고 사람은 많은 주택가에 살다보니 가끔  일이다. (자주는 아니다) 그리고 오늘 읽은 소설 「아침의 문」이 바로 그런 내용이다. 이상문학상 대상 수상작이다.



주인공은 죽고 싶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죽는데 실패했다. 그리고 다시 시도한다. 그걸 저자는 문이라 표현했다. 문으로 나가려는 주인공은 생각도 못한 상황을 대면하게 된다. 눈 앞에서 새로운 생명이 철퍼덕 시작되려는 것이다. 무언가 문을 통해 나오고 있다. 병원도 아닌데 눈 앞에서 출산이라니.. 난감하게도 둘은 마주친다.


서로의 문 밖으로 얼굴을 내민 채

이곳을 나가려는 자와
그곳을 나오려는 자는

그렇게 서로를 대면하고 있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왜? 라는 물음을 가슴속에 울리며 그는 여전히 의자 위에 서 있다. 그리고 보았다. 스르르, 끝끝내 문을 열고 나오는 무언가를 볼 수 있었다. 쏟아지듯, 혹은 엎질러지듯 나오는 팔과 다리... 아주 작은 손가락과 발가락을 멀리서도 볼 수 있었다. 여자아이란 사실마저 알 수 있었고, 인간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엎질러지는 거란 사실을

알 수 있었다.
 _박민규 「아침의 문」



문에서 마주친다면, 둘 중 하나는 후진해야 한다. 요즘 애들이 다 그렇듯, 새로운 생명은 말이 통하지 않고, 막무가내로 나와버린다. 그렇다면 주인공이 물러설 수밖에. 아이를 안아올린다.


그는 아이를 내려다본다. 아이가 운다. 울고, 숨을 쉰다. 주섬주섬 붕대를 모아 그는 일단 아이의 몸을 덮어준다. 그러면 안 되는데, 그는 잠시 아이를 안아본다. 엉거주춤 무릎을 꿇었다가, 매달린 태반을 어쩌지 못해 통째로 안아 올린다. 그의 품에서 아이는 울다, 훌쩍인다. 바닥의 콘크리트보다도 무뚝뚝한 인간이지만, 적어도 콘크리트보다는 따뜻한 인간이기 때문이다.
 _박민규 「아침의 문」


결국 죽음에 실패한 주인공의 이야기다. 새로운 삶에 의해서 죽음에 실패했지만, 죽음을 결심한 것도 삶에서 시작한다. 죽음은 삶을 인정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삶을 받아들이고 삶을 부여잡고 삶을 잡아당기고 어떻게든 이리저리 움직이며 삶과 샅바싸움을 벌인 사람만이, 내동댕이 치거나, 내쳐질 수 있다. 도망치고 외면한 사람은 삶과 마찬가지로 죽음과도 대면하지 못한다. 저자의 표현에 의하면, 결혼한 사람만 이혼할 수 있다.


절대 믿어선 안 될 것은

삶을 부정하는 인간의 나 자살할 거야, 란 떠벌림이다. 그런 인간이 가야 할 길은 알콜릭 정도가 적당하다. 삶을 인정하지 않고선 실제로 자살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뭐랄까, 결혼을 한 인간만이 이혼을 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가 아닐 수 없다. 빅 데이에 참가했다 돌아간 두 녀석도 전자의 경우였다. 말하자면 여태 독신으로 살면서 난 반드시 이혼할 거야, 를 외쳐온 셈이랄까. 물론 이것은 험담이 아니다. 그들은 그저

살아갈 수 있는 인간들이다, 라는 얘기다.
 _박민규 「아침의 문」


★★★★★ 문에서 나가려는 자, 문으로 나오려는 자. 우리는 문에서 만난다.





얼마 전 변희수 하사는 죽는데 성공하고 말았다. 용감하게 세상과 맞서고 세상의 비난을 오롯이 받아내고 있을 때, 나는 방관자들과 함께였다. 그녀는 삶을 받아들이고 삶을 부여잡고 삶을 잡아당기고 어떻게든 이리저리 움직이며 삶과 샅바싸움을 벌였다. 그리고 내쳐졌다.


「아침의 문」의 주인공이 문에서 누군가를 만나 죽음에 실패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떠올린다. 변희수의 문을 막아서지 못한 게 못내 아쉽고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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