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 준지 하면 무서운 그림을 떠올렸다. 전집을 읽어보니, 그보다는 아이디어로 승부하는 작가에 가깝다. 공포심을 자극하는 건 단순히 무서운 그림이 아니다. 신체절단과 같은 물질적인 고통 외에도 남과의 비교, 트라우마와의 조우, 노화, 망각, 죽음 등 두려운 소재를 다 활용한다.
10권 짜리 전집이다. 여자아이로 술을 만드는 이야기, 머리카락이 계속 자라는 이야기, 아이들이 아이스크림이 되는 이야기, 서커스에서 단원이 실수하는 이야기, 지도 없이 다닐 수 없는 마을 이야기, 벌집을 수집하는 이야기, 이쁘면 일찍 죽는 이야기 등등 아이디어가 끝도 없다.
가장 재미있었고 소름 끼쳤던 이야기는 3권에 나오는 「괴롭히는 아이」다. 주인공은 한 여자아이. 놀이터에서 작은 남자 아이와 놀아주었다. 남자아이는 여자아이를 매우 따랐고 여자아이는 슬슬 귀찮았다. 그러다 남자아이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남자아이가 크게 다친 이후 둘은 한동안 보지 못했다. 시간이 지나고 성인이 되어서 우연히 다시 만나게 되었다. 여자아이는 사과했고 남자아이는 고백했다. 둘은 결혼했고 귀여운 아이를 낳았다. 그런데 갑자기 남자가 실종된 것이다. 여자는 아이를 혼자 길렀다. 아이는 여자를 매우 따랐고 여자는 슬슬 귀찮았다. 그러다 깨달았다. 어렸을 때 남자아이를 괴롭히는 게 아주 재미있었지. 이 아이도 괴롭혀주겠어. 내용도 놀랍지만 마지막은 소름끼치는 장면으로 마무리된다. 아직도 여자의 표정이 생각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