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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태원댄싱머신 Mar 31. 2021

성공사례가 지망생을 망친다

_최민석 「능력자」

나는 지금 고민하고 있다. 이 책에 별을 몇 개 줄 것인가. 브런치에 적는 독후감 하나를 백상예술대상 선정하는 신중함으로 고민하고 있다. 흔쾌히 별 다섯개를 주기에는 아쉽다. 별 네개? 네개 받을 작품은 아니다. 그러면 네개 반? 나는 기회주의자 아니다. 하나를 골라야 한다.



내용은 형식을 규정한다. 형식이 곧 내용이다. 많은 철학자들이 달려들었던 문제지만 이 소설에 대해서는 꼭 맞는 명제다. 푸하하 웃으며 읽다가 어느새 숙연해지고, 건성으로 넘기며 훑다가도 갑자기 밑줄을 치면서 낭독하게 된다. 그게 이 책의 내용이자, 형식이다. 나아가 저자가 하고 싶은 말도 이와 같다. 중요한 것을 시시하게, 시시한 것을 성의 있게 그린 소설 「능력자」에서, 저자도, 주인공도 비슷한 행동을 보인다.



많은 소설이 그러하듯, 주인공은 소설가다. 야설을 쓰는 소설가라는 점이 독특할 뿐이다. 그는 한 권투선수의 자서전을 쓰게 되는데, 그 과정이 소설의 큰 줄기다. 권투선수는 이제는 몰락한 과거의 챔피언이고, 이번에 과감히 일어서려고 한다. 초능력으로 상대를 쓰러뜨렸다고 주장한다는 점이 조금 특이할 뿐이다. 딱 봐도 정상은 아닌 이 권투선수는, 과연 정상이 아니었다. 정상에서 내려와서 초능력을 외치는 자의 비참한 말로를 그리는 것처럼 소설은 시작된다. 몇 번의 놀라움과 통쾌함을 지나서 결국 깨달음으로 소설은 마무리된다.


소설에 반전은 필수고, 소설가에게 반전 매력은 필수다. 원래 좋아했던 소설가의 작품이지만, 책을 덮고 나니 더 좋아졌다.


지금에서야 말하지만, "오늘의 작가가 되기까지 삼성그룹의 이건희 회장님께서 사회 공헌 차원에서 남몰래 매달 제 통장에 300만 원씩 입금해 주셨습니다"라는 훈훈한 미담이 있었으면 좋겠지만, 그럴 리가!

나는 철저하게 추락해 있었고, 곧 임종을 맞이할 물고기가 바닥에 파닥거리는 심정으로 파닥거렸다. 때는 바야흐로 8월, 장소는 하필이면 아스팔트였으므로, 뜨거워서 살아남아야겠다는 심정으로 정말이지 '파닥, 파닥, 파다닥'거렸다. 파닥거리는 시절에 누군가 파닭이라도 사줬으면 좋았겠지만, 당연히 그런 사람은 없었고, 어쩔 수 없는 심정으로 나는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_최민석 「능력자」


이 땅에 태어난 이상 가만있을 수는 없지! 웅변하듯이 어린아이는 경쟁을 시작한다. 중학교 고등학교를 거쳐서, 수능만 보면 끝날 것 같이 희망고문하던, 달리기는 취업을 하고 결혼을 하고 나서도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아이를 낳고 유전병 같은 경쟁의식을 물려주면서까지, 우리는 지치지 않고 자기계발 하고 있다. 힘들어 보이는데, 지친 게 분명한데도, 멈추지 않는 이유는 사례 때문이다.



조금만 참고 더 달리면, 합격할 수 있다고, 똘똘한 한채 마련할 수 있다고, 경제적으로 독립할 수 있다고, 이미 성공한 사례들이 온몸으로 웅변한다. 미디어는 사례에 조명을 비추고, 한두 건에 불과한 행운이 갑자기 대표적 사례가 된다. 그렇게 사례는 지망생을 괴롭힌다. BTS는 연예인 지망생을 괴롭히고, 변호사 출신 정치인이 고시낭인을 괴롭히고, 김연아가 피겨꿈나무를 괴롭힌다. 성공의 의자는 하나뿐인데, 샐 수 없이 많은 지망생이 의자놀이를 하고 있다.



박민규는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에서 시시함을 말한다. 세상의 요구에서 벗어나려면 그것을 시시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에 휩쓸리지 않으려면, 그것을 시시하게 만들 수밖에 없다. 최민석이 소설을 통해서 해내고 있는 것이다.


부와 아름다움에 강력한 힘을 부여해 준 것은 바로 그렇지 못한 절대다수였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끝없이 욕망하고 부러워해왔습니다. 이유는 그것이 <좋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누가 뭐래도 그것은 좋은 것입니다. 누가 뭐래도 우리는 그런 세상을 살고 있으며, 누가 뭐래도 그것은 불변의 진리입니다. 불변의 진리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방법은 그것을 <시시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마치 지금 70년대 냉전을 돌아보듯, 마치 지금 지구를 중심으로 태양은 돈다 믿었던 중세의 인간들을 돌아보듯 말입니다. 물론 그것은 <좋은 것>이지만, 그것만으론 <시시해>. 그것만으로도 좋았다니 그야말로 시시한걸.
 _박민규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소설의 대부분은 갖은 말장난으로 채워져 있다. 이 시시함으로 결국 엄숙하고 진지한 경쟁의 링을 무너뜨린다. 주인공인 권투선수도 마찬가지다. 무도를 닦고 (춤을 춘다) 초능력을 부린다며 방송에 출연해서 망신당하고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해서 손가락질 받는, 그는 세상의 평가에서 한 걸음 떨어져서, 자신만의 판정을 내린다. 심지어 작가도 마찬가지다. 매일 같이 가벼운 글을 쓰고 시덥지않은 에세이를 내는 작가는 가벼운 농담 사이사이에 우직한 펀치를 실어날린다. 소설가가 소설을 통해서, 등장인물을 통해서, 소설가의 삶을 통해서, 한방을 날리는데, 독자는 다운될 수밖에.


★★★★★ 한없이 가벼운 소설이다. 한없이 가벼운 주인공이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독자에게 한 방을 날린다.




사랑하는 작가1: 최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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