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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태원댄싱머신 Apr 04. 2021

독자는 서평을 통해 작가가 된다

_이원석 「서평 쓰는 법」

유유


유유출판사의 책을 스무 권은 읽었다. 책의 크기(작다), 소재(재생지), 그리고 무게(가볍다)까지 마음에 들어서, 자주 사서 읽었다. 책의 내용을 보고 고른 게 아니다 보니, 실망스러운 경우도 많았다. 「리뷰 쓰는 법」, 「유튜브로 책 권하는 법」이 대표적이다. 비슷한 제목인 「서평 쓰는 법」도 비슷한 느낌이어서 사지 않았다. 그러다 어느 날 저자명을 우연히 봤는데.. 응? 이원석?!


이원석


위에서 밝힌 바와 같이 출판사를 기준으로 책을 사 모았다. 책은 굿즈로서, 장식품으로서의 기능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차곡차곡 쌓이는 모습이 나쁘지 않았다. 다만 이제 서재는 포화상태고, 정확히 말하면 서재를 벗어나 쌓아놓은 책으로 인해서 온 집안이 포화상태고, 더 큰 곳으로 이사를 가야하는데, 전세가격은 쌓이는 책보다 더 높이 올라갔고, 고공행진 하는 부동산 가격의 주범인 분양가상한제 폐지와 임대사업자 특혜로 화는 나는데 표현할 길은 없고, 이 분노를 효과적으로 발산하기 위해서 지적 능력을 키우고, 그러기 위해서 또 책을 사고, 책은 다시 바닥에 쌓이고, 이사는 가야겠고, 그런데 전세 가격은!! 암튼 이 악순환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이제는 좋아하는 출판사라고 해서 무작정 사들이지 않기로 했다. 대신 저자 중심으로 읽으려 한다. 이원석은 작년에 읽고 너무 좋아서 몇 번을 더 읽었던 「대한민국 자기계발 연대기」의 저자다.



편견


독후감과 서평 쓰는 게 취미인 나조차 「서평 쓰는 법」이라는 제목의 책을 사는 건 주저했다. 편견 때문이다. 글쓰기 책이 범람하고 있다. 책을 읽는 사람은 많지 않지만 글을 쓰는 사람은 많다. 독자보다 저자가 많은 건 아닌가 할 정도다. 최근 출판의 트렌드를 보면, 깊이 있게 공부한 학자의 책보다 이해하기 쉽고 공감이 잘되고 가벼운 에세이가 인기다. 그래서 그냥 잘 쓰면된다, 너는 할 수 있다, 조금 못써도 괜찮다, 시작이 반이다, 운운하는 아마추어 서적을 예상했다.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저자 이원석은 학자다. 학자 답게 논문 쓰듯이 논리와 근거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학자의 책은 탄탄하다. 좋은 제목은 아니라 생각하지만, 제목 덕분에 많은 사람이 읽게 된다면 그것도 나쁜 일은 아니다. 실용서 같은 책 제목에 끌렸으나, 감동과 통찰의 경험을 했으니 결국엔 해피앤딩이다.


다만 감정을 동력으로 삼더라도 지적으로 충분히 준비되어야 합니다. 분노로 두개골을 열어젖혀도 그 안에 근육밖에 없다면, 결과는 달라지지 않습니다.
 _이원석 「서평 쓰는 법」



좋은 목차는 지도 역할을 한다.


저자는 책을 이해하고 정리하기 위해서 목차를 본다고 한다. 그의 말대로 이 책의 목차는 저자의 의도한 바를 분명하게 표명하고 있다.


서평의 본질

서평의 목적 (독자)

서평의 전제 (어떻게/무엇을)

서평의 요소 (요약/평가)

서평의 방법 (생각, 시작, 구성, 마무리, 퇴고 등)


차곡차곡 쌓는다. 저자 말대로 목차를 읽는다고 책의 내용이 생각나는 건 아니지만 (목차를 봤는데 신기하게도 내용이 떠오르지 않는다) 그래도 목차와 내용을 번갈아 보면서, 책에 대한 구조적이고 전반적인 이해를 위해 의식적으로 노력했다. 그게 확실히 책을 효과적으로 읽는데 도움이 된다.


이를 통해 책의 전체 구도와 흐름을 머리에 새기면 책을 읽을 때 수많은 문장과 문단 속에서 조금 덜 헤매게 되고, 조금 더 수월하게 맥락과 요지를 정리할 수 있습니다. 충실한 목차는 좋은 지도와 같은 구실을 합니다. 그렇기에 수시로 차례를 들춰 보면 좋습니다. 저는 육체의 피곤이나 마음의 근심, 핸드폰 문자 등으로 인해 집중이 약해지고 산만해질 때 차례로 돌아갑니다.
 _이원석 「서평 쓰는 법」


서평이 책을 확장시킨다.


책을 읽으면서 독자는 성장한다. 책을 읽으며 고민하고 부정하고 끝내 받아들이는 과정이 스스로의 한계를 허무는 과정이다. 이를 통해 스스로에 대한 이해, 책에 대한 이해, 세상에 대한 이해 모두 달라진다.


재미있는 건 책도 성장한다는 거다. A가 B의 가족에게 해코지를 해서, B가 복수하다가 모두 죽었다는 이야기를 만들어서 책으로 냈다고 하자. 초판도 다 팔리기 쉽지 않다. 흘러가는 책, 사장되는 책 중 하나가 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수십만의 독자가 읽고, 수만의 서평이 나오고, 수천의 책에서 이를 인용한다면, 사람들은 이걸 고전이라 부를 거다. 셰익스피어의 「햄릿」이 그렇다. 단순한 구조의 서사지만, 후세의 해석이 이를 풍성하게 만들었다.


좋은 책은 그 책의 연구자를 포함한 독자의 해석을 매개로 하여 계속 성장합니다. 그러한 책의 경계는 가변적입니다. 그 경계에 독자가 서 있습니다. 독자의 독서가 곧 해석입니다. 좋은 해석은 텍스트를 확장시킵니다.
 _이원석 「서평 쓰는 법」
그러나 우리가 알고 있는 위대한 고전 작품이나 좋은 의미의 문제작은 독자를 자기 역량의 한계와 직면하도록 이끄는 가운데 독자의 지평을 확장시킵니다. 독자는 거듭하여 책을 해석하면서 그 책의 지평을 확장시키고, 동시에 독자 자신도 새로워집니다.
 _이원석 「서평 쓰는 법」


요약 없는 서평은 맹목적이다.


서평을 쓴지 1년이 넘었다. 이제 돌 조금 지났지만, 아직 걸음마도 제대로 때지 못했다. 나는 요약을 빼먹고 있었다. 요약과 평가는 서평의 필수요소다. 하나라도 빼먹으면 서평이라 할 수 없다. 먼저 성실하게 읽고 이해하고 요약한 다음에 자신만의 평가를 덧붙여야 그럴듯한 서평 하나가 만들어진다.


내 언어로 책의 내용을 요약하는 건 건성으로 읽지 않았다는 증거이자, 그 자체로 해석이다. 내가 처한 위치에서 하는 요약이기 때문에, 같은 책을 읽어도 사라마다 요약이 다르다.


그렇기에 좋은 요약은 공정한 평가의 전제가 됩니다. 요약은 성실한 독서에 따른 이해의 결과요, 증거입니다. 요약이 서평의 본질은 아니지만, 요약 없이 서평을 작성할 수는 없습니다. 평가가 열차라면, 요약은 레일입니다. 따라서 평가 없는 서평은 공허하나, 요약 없는 서평은 맹목적입니다. 성실한 독서와 이를 통한 적절한 요약 다음에 나름의 평가가 따라야 합니다.
 _이원석 「서평 쓰는 법」


독자는 서평을 통해 작가가 된다.


도서 시장은 줄어들고 있지만, 서평은 늘어나고 있다. 저자도 늘어난다. 서평이 늘어나면서, 저자가 늘어난다는 건 우연이 아니다. 독자는 서평을 쓰면서 저자가 된다.


벤야민에 따르면, 독자와 작가의 차이는 다만 기능상의 차이가 되었다. 이원석에 따르면, 이에 따라 저자와 독자의 위계적 차이도 사라지고 있다. 작가가 한 마디 하면 언론에서 보도하고 다들 받아들이기만 하는 일방적인 소통은 이제 끝나간다. 오히려 저자를 공격하고 난해하다며 책을 던져버리는 블로거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나고 있다.


그러니까 모든 독자의 작가화 현상은 위계가 존재하는 계급 사회의 해체에 기여하는 한 과정인 셈이지요. 제 방식으로 풀어 이야기하자면, 이는 건강한 공론장의 활성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자와 독자 사이에 위계가 사라지고, 대등하게 의견을 주고받는 것은 다름 아닌 서평을 통해 온전히 실현됩니다.
 _이원석 「서평 쓰는 법」



★★★★★ 주기적으로 읽을 가치가 있다. 독자와 저자 사이에 다리가 있다면, 그게 바로 이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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