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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태원댄싱머신 Apr 14. 2021

이쁜 책이 최고야

_한병철 「아름다움의 구원」

한병철의 글은 도식적이다. 그래서 어려운 단어가 난무하는 철학책임에도 불구하고, 대략적인 이해가 가능하다. 도식만 이해하면 어느 정도 머리에 그려지기 때문에, 이 책을 이해했다는 착각을 하게 된다. 물론 세부적인 개념에 대해 설명하지는 못한다. 어디까지나 개략적인 이해다. 「아름다움의 구원」도 유사한 형식을 보인다. 도식을 가볍게 따라가다 보면, 세세한 논리는 놓치더라도 이론의 핵심에 도달할 수 있다.


한병철은 부정성의 철학자다. 모든 책에서 빠짐없이 등장하는 개념이자, 핵심이다. 어찌보면, 소재만 달라질 뿐,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같다.



하고 싶은 말은 크게 긍정과 부정으로 나뉜다. 긍정은 매끄러움, 좋아요, 디지털, 소비다. 부정은 은폐, 상처, 거리다.


매끄러움


현대의 아름다움은 매끄러움이다. 만지고 싶은 마음이 절로 드는 촉각적 아름다움이다. 부드러운 유선형의 아이폰이 대표적이다. 생각할 것도 없고, 해석의 여지도 없다. 단순하게 아름답다.


제프 쿤스의 예술의 핵심은 매끄러운 표면과 이 표면의 직접적인 작용에 있다. 그 외에 해석할 것도, 해독할 것도, 생각할 것도 없다. 그것은 좋아요의 예술이다.


좋아요


이쁜 사진을 보면, 좋아요를 누른다. 대상을 보고 좋아요를 클릭하기 까지 1초면 충분하다.


매끄러운 것은 상처를 입히지 않는다. 어떤 저항도 하지 않는다. 그것은 좋아요Like를 추구한다. 매끄러운 대상은 자신의 반대자를 제거한다. 모든 부정성이 제거된다.


디지털


디지털 세계에서 아름다움은 균열이 없다. 만족을 주는 작품을 몇 번 클릭하면 알고리즘에 의해 비슷한 취향의 작품을 추천해준다. 낯섦도 불편도 없다. 디지털 공간은 매끄럽다.


부정성 없는 만족, 다시 말해 내 마음에 든다라는 것이 디지털 미의 징표다. 디지털 미는 어떠한 낯섦도, 어떠한 비동일성도 허용하지 않는, 동일한 것의 매끄러운 공간을 형성한다.


소비


우리에게 익숙한 아름다움은 성적인 매력, 건강한 육체를 근거로 한다. 소비자본주의의 산물이다. 개성이나 윤리와 연관된 다양한 아름다움은 진즉에 밀려났다. 기업이 가장 좋아하는 소비자는 개성도 없고 윤리도 없고 오로지 유행만을 따르는 인간이다.


개성과 소비는 서로 대립한다. 이상적인 소비자는 개성이 없는 인간이다. 이 개성 없음이 무차별한 소비를 가능하게 한다.


여기까지는 긍정이다. 이어서 부정을 소개한다.


은폐


다 보여주는 것보다 숨기는 게 아름답다. 완전한 공개는 포르노그래피다. 아름다움을 위해 작가는 숨기기도 하고 미루기도 하고 방향을 바꾸기도 한다. 이를 통해 대상은 아름다움을 유지한다. 아름다움은 대상 자체보다, 이를 은폐하는 형식과 관련해 있다.


옷은 신적이다. 숨김은 미에 본질적이다. 그러므로 미는 옷을 벗지도, 폭로되지도 않는다. 벗길 수 없음이 미의 본질이다.
그러나 비밀로서의 미는 오로지 덮개를 덮개 자체로 인식하는 것을 통해서만 직관할 수 있다. 덮여 있는 것을 인식하기 위해서 우리는 무엇보다 덮개에 주목해야 한다. 덮개는 덮여 있는 대상보다 더 본질적이다.


상처


상처가 없다면 예술도 없다. 보는 사람에게 고통을 주고 감정의 변화를 주어야 예술 경험이다. 상처를 주지 않는 작품은 단순히 재미와 만족을 줄 뿐이다.


경험은 반드시 전율과 엄습의 부정성을, 다시 말해 상처의 부정성을 수반한다.


거리


아름다움을 느끼려면 거리가 필요하다. 매끄러운 표면 속에 무언가가 있어야 이를 파헤칠 수 있다. 거리가 사라지면 에로스는 포르노그래피가 된다. 때로는 눈을 감고 스스로 거리를 만들기도 하는데, 디지털 영상의 세계는 이조차 허용하지 않는다.


그러나 미적 판단은 관조적인 거리를 필요로 한다. 매끄러움의 예술은 이 거리를 없앤다.
유혹에는 "거리 두기의 파토스", 나아가 은폐의 파토스가 내재한다. 사랑의 친밀성은 이미 유혹에 본질적인 비밀스러운 거리를 축소시킨다. 그리고 마침내 포르노는 이 거리를 완전히 제거해버린다.
미적 거리가 아름다움 주변에서 관조적으로 머무르는 것을 가능하게 해준다. 미적 직관은 소비적이 아니라 관조적이다.


한병철이 하려는 말은 간명하다. 우리는 미의 위기를 맞고 다. 만족만 주는, 좋아요만을 바라는, 휘발되는, 아름다움만이 남았다. 아름다움을 구원해야 한다. 관조를 통해 회상을 통해 사유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아름다움을 추구해야 한다. 부정성의 아름다움을 구원해야 한다.



★★★★ 책의 내용과 달리, 책의 형식은 아주 매끄럽고 귀엽다. 아름답다.



사랑하는 작가3 : 한병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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