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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태원댄싱머신 Mar 22. 2021

문학적 이재용

사랑하는 작가2 : 박민규

첫 만남은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였다. 다음으로 「눈먼 자들의 국가」를 읽고,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을 읽고. 그의 작품 하나하나를 찾아 읽으면서 여기까지 왔다. 이제는 팬이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여자친구에게 시도때도 없이 박민규 이야기를 한다. 여자친구는 박민규를 읽지 않았지만, 그에 대해 소상히 알고 있다.



아직도 읽지 않은 작품이 있고, 찾아서 읽고 있다. 장이 좋지 않은 편이고, 잘 쓰인 글을 읽으면 곧잘 배가 아프지만, 그의 글을 읽을 때만큼은 (퇴사한 것마냥) 속이 편안했다.


천재. 그야말로 천재의 글이었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 비슷해야 화도 나고 분통도 터지는 법이다. 내가 아쉽게 못간 대학을 누가 뒷문으로 들어갔다고 하면 악플러가 되고, 내가 입사하지 못한 회사를 특별전형으로 들어갔다고 하면 투사가 된다. 이재용이 프로포폴을 했던 프로포즈를 했던 간에, 다들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 나에게는 박민규가 이재용이다. 이건희에게 천부적인 글 재능을 상속받은 그에게 나는 존경과 선망 외 다른 감정은 느끼지 않는다.


그의 자서전을 읽었다. 자서전이라고? 아직 자서전을 쓸 정도는 아닌데?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도 같은 생각을 했나보다. 이상문학상에 대상으로 선정되어서 (문학적) 자서전이 나오기는 했으나, 그도 어이없어한다. 그래서 자서전 제목은 「자서전은 얼어 죽을」이다. 자서전에서 솔직히 고백한다. 그냥 써진다고. 어떻게 보면 재수없는 글이지만, 이재용이니까... 하고 수긍이 간다. 이재용이 이런 자서전을 썼다고 해도 다들 이런 반응일 것이다.


이재용은 서울대 출신이다. 이 사실에 분노하는 사람이 있나? 아니면 재벌에게 당연히 주어진 트로피라고 생각할까? 이상문학상도 박민규에게는 서울대 졸업장만큼 당연한 일이다. (실제 박민규는 비서울대 출신이다. 서울대는 왜 문학적 이재용을 몰라보는가.) 짧은 자서전이었지만, 그걸 읽는 새, 나는 또 감탄해버리고 말았다.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작가다.


글을 쓰는 행위나 방법에 대해선 사실 무관심하다. 내게 소설은 '그냥' 쓰면 되는 것이다. 창작의 고통이란 말을 들을 때마다 그래서 늘 기분이 이상하다. 그냥... 쓰면 되는 거잖아. 절로 그런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어떻게 써야 고통스럽지? 그런 고민을 한 적도 있었다.
 _박민규 「자서전은 얼어 죽을」


창작의 고통은 따로 있다.

글을 쓰면 쓸수록, 또 아무리 글을 써도... 결국 나는 인간일 뿐이라는 '고통'이다. 변하지 않는 인간의 고통... 아무리 글을 써도 변하지 않는 세계의 고통. 우리가 인간이라는 이 실질적이고... 물질적인 고통. 단어와 문장, 6하원칙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이 고통. 우주를 창조한 신에게도

결국 어떤 우주를 만들어도 나는 '신'일 뿐이라는 고통이 따랐을 것이다. 아무도 없는 창밖을 바라보노라면, 그래서 이 고통이 때로 합당하고 감사한 일임을 나는 깨닫게 된다. 당신과 나는 실은 신적인 고통을 겪고 있다.
 _박민규 「자서전은 얼어 죽을」





사랑하는 작가2 : 박민규


최근에 읽은 박민규의 책과 독후감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 신자유주의와 맞서 싸운 삼미! 자기계발과 맞서 싸운 박민규!


「핑퐁」 ★★★★★ 초현실주의 소설. 진실만 추구하는 데카르트 같은 사람도 읽다보면 현실이 뭐가 중요해! 하며 정신없이 읽게 된다.


「눈먼 자들의 국가」 ★★★★ 충분히 슬퍼하지 않았을 때 슬픔은 간식을 기다리는 강아지처럼 가만히 기다린다.


「지구영웅전설」 ★★★★★ 정의란 무엇인가. 미국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바나나란 무엇인가.


「카스테라」 ★★★★★ 혀를 절레절레 내두르다 절에 가고 싶은 책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 별다섯개로는 부족하다. 소설의 아름다움이 극단으로 향하면 시가 된다.


「갑을고시원 체류기」 ★★★★고시원의 삶도 그럴 수 있겠지.. 하고 받아들인다.


「아침의 문」★★★★★ 문에서 나가려는 자, 문으로 나오려는 자. 우리는 문에서 만난다.


「딜도가 우리 가정을 지켜줬어요」 ★★★★★ 희극의 주인공이 되는 건 한 순간이다. 잘 준비하자.





사랑하는 작가1 : 최민석


사랑하는 작가2 : 박민규


사랑하는 작가3 : 한병철


사랑하는 작가4 : 강준만


좋아하는 출판사1 : 유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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