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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태원댄싱머신 Sep 23. 2020

충분히 슬퍼하지 않았을 때 슬픔은

 _박민규 「눈먼 자들의 국가」

세월이 가라앉을 때, 나는 외국에 있었다. 내가 운영하고 있는 식당도 좌초 직전 상태였기 때문에 다른 사람 걱정은 사치였다.


몸만 겨우 탈출해서 한국에 돌아온 후에는, 사람들의 반응이 신기했다. 자신의 일도 아니면 굉장히 힘들어하는 것 같았다. 많은 사람들이 삶의 태도를 바꾼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무언가 엄청난 일이 벌어졌나 보다, 마냥 추측만 뿐이었다. 몇 년이 흐르고, 이제 조용하라는 소리도, 그만 시끄럽게 굴라는 소리도 종종 들렸다.


그러다 이 책을 읽었다.



세월호에 대해 여러 작가들이 글을 써 모았다. 눈길 주지 않았던 주제의 책을 골랐던 건 오로지 박민규의 글이 있었기 때문이다. 책을 펼쳐서 박민규의 글을 가장 먼저 읽었고. 예상치 못한 충격과 예상했던 감동을 받았다. 나는 관계 없다며 지나가는 행인 코스프레를 하던 나를 강제로 끄집어내어서 유가족 텐트로 밀쳐버리는 힘이 있었다.



박민규는 사건과 사고를 나눠서 논리적으로 서술한다.


이제 겹쳐진 두 장의 필름을 분리할 때가 되었다. 세월호는 애초부터 사고와 사건이라는 두 개의 프레임이 겹쳐진 참사였다. 말인즉슨 세월호는

선박이 침몰한 '사고'이자
국가가 국민을 구조하지 않은 '사건'이다

이제 이 두장의 필름을 분리해야 한다. 겹쳐진 필름이 이대로 떡이 질 경우 우리는 이것을 하나의 프레임, 즉 '세월호 침몰사고'로 기억할 위험이 크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언론이 아직도 이 타이틀을 쓰고 있다. 별다른 오류가 없어 보이지만 여기엔 누구도 의도하지 않은 함정이 있다. 명사는 모든 것을 아우른다. 그리고 인간의 무의식은 시간이 흐를수록 이를 '사고'로 인지하기 마련이다. 사소한 문제인 듯하나 이는 매우 중요한 사안이다.

사고와 사건은 다르다. 사전적 해석을 빌리자면 '사고'는 뜻밖에 일어난 불행한 일을 의미한다. 반면 '사건'은 사회적으로 문제를 일으키거나 주목받을 만한 뜻밖의 일을 의미하는데 거기엔 또 다음과 같은 해석이 뒤따른다. 주로 개인, 또는 단체의 의도하에 발생하는 일이며 범죄라든지 역사적인 일 등이 이에 속한다. 그렇다. 그런 이유로 우리는 교통사고를 교통사건이라 부르지 않으며, 살인사건을 살인사고라 부르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세월호 사고와 세월호 사건은 실은 전혀 별개의 사안이다. 나는 후자의 비중이 이루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훨씬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_박민규 「눈먼 자들의 국가」


이 책을 읽고 나는 비로소 분노할 수 있었고 슬퍼할 수 있었다. 그리고 사람들의 좌절감을 어느 정도 이해하게 되었다.



★★★★ 충분히 슬퍼하지 않았을 때 슬픔은 간식을 기다리는 강아지처럼 가만히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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