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기 전에 한참을 망설였다. 정치인의 거짓말이라니.. 정치 혐오를 조장하게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정치를 혐오하는 건 쉽다. 근거 없이 무턱대고 미워할 수도 있으며, 심지어 정치의 혜택을 보고 정치의 도움을 받으면서도 미워한다. 사람들은 자극적인 걸 좋아하는데, 정치인처럼 때리기 좋은 샌드백은 없다. 국회의원은 월급 없이 봉사직으로 해야돼!! 내가 국회의원이 되면 말이야.. 말은 쉽다. 그래서 나도 때린다. 자극적인 게 최고다.
거짓말 하나.
더불어민주당의 국회의원, 박주민이 페이스북에 글을 하나 올렸다. "이렇게 말씀드리기가 저로서도 쉽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더 나은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발걸음을 멈춰서는 안 된다"며 투표를 독려했다. 민주사회에서 투표를 독려하는 건 지극히 자연스럽다. 이렇게 말씀드리기가 나로서도 쉽지 않지만, 오늘은 자극적으로 가기로 했으니 반박한다.
박주민은 인권변호사 출신이다. 국정원을 고발했고, 세월호 참사를 법률 지원했고,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변론해왔다. 소외당한 사람들을 대변하기 위해서 국회의원이 되었다는 박주민에게 사람들이 투표를 하면, 박주민은 법을 만들고, 세상은 조금 더 왼쪽으로 이동한다.
그의 주장을 단순화 하면 이렇다.
주장A : 민주시민이라면 투표해야. 주장B : 세상은 좀더 왼쪽으로 가야.
만약 대부분의 유권자들이 박주민에 동의해서 투표장을 향한다면, 고민할 게 없다. 실제는 다르다. 소외당한 사람을 배려하는 세상보다, 효율적이고 부유하고 공정한 국가를 바라는 사람도 많다. 어쩌면 절반 이상이 세상은 좀더 오른쪽으로 가야한다고 외친다. 그들이 투표장을 향하면, 주장A에 의하면 좋은 현상이고, 주장B에 따르면 나쁜 사회가 된다. 상충되는 것이다.
주장A를 다시 생각해보자. 박주민은 정말 이렇게 생각할까.
왼쪽에 있는 정치인은 왼쪽에 있는 유권자들에게 외친다. 투표를 하자. 민주사회를 위해 투표하자. 오른쪽에 있는 유권자들이 들을까 봐 조용히 말한다. 오른쪽에 있는 정치인은 오른쪽에 있는 유권자들에게 외친다. 투표를 하자. 공정사회를 위해 투표하자. 왼쪽에 있는 유권자들이 깰까 봐 조심히 말한다.
박주민의 주장A는 반쪽짜리다. 괄호가 생략되어 있다. (왼쪽에 있는) 민주시민이라면 투표해야.
거짓말 둘.
국민의힘의 시장 전문 정치인, 오세훈이 서울시장에 당선되었다. 그것도 세 번이나. 생태탕 이야기를 하려는 건 아니다. 그도 (오른쪽에 있는) 시민에게 투표를 독려해왔다. 투표 이야기를 하려는 것도 아니다. 그는 댄디한 이미지로 중도표심을 보수정당으로 끌어왔다. 태극기 집회에 참여해 문재인 치매설을 주장하기도 한다.
주장A : 무상급식은 안된다. 주장B : 문재인은 중증 치매환자다.
그의 주장을 굳이 하나하나 따져볼 필요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거짓말
거짓말을 안 하기는 어렵다. 정치인이라고 사회생활을 안할 수는 없으니 말이다. 문제는 어설픈 거짓말이다. 박주민은 들키지 않게 정교한 논리를 개발해야 한다. 오세훈은 거짓말에 재능이 없다. 지금이라도 정직한 삶을 사는 걸 추천한다.
사랑을 변질시키고 부패시키는 것은 거짓말이 아니라 덜 피어 궁색한 거짓말이다. 방부재가 필요하다면 잘 익은 거짓말에 푹 담가야 한다. 걸음걸음마다 구라와 공갈이 꽃잎처럼 뚝뚝 떨어지도록. _전석순 「거의 모든 거짓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