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이도나 「이달의남자」 상반기 결산
순식간에 다 읽어버렸다. 책을 느리게 읽기로 유명한 나조차 앉은 자리에서 다 읽었다. 점심을 먹고, 다음 일정이 조금 늦어져서, 카페에서 기다리며 책을 펼쳤는데, 아주 쉽게 읽혔다. 앞부분은 정말 허탈할 정도로 가볍다. 그리고 뒤로 갈수록 흥미진진한 이야기들이 진행된다.
이런 관리는 대체 누굴 위해서 하는 것일까. 나는 왜 수영장에 올 때마다 겨드랑이 털을 밀어야 할까. 저 남자는 아무렇지 않게 말발굽으로 보일 만큼의 각질을 고이고이 쌓아놓고 왔는데 말이다.
_이도나 「이달의남자」
이렇게 의식의 흐름대로 오만가지 생각을 하는 동안 강습은 끝이 났다. 샤워를 한 후 평상복으로 갈아입고 탈의실에서 나오는데, 로비에 아까 그 남자가 서성이고 있다. 수경을 벗고 자세히 보니 이목구비마저 군더더기 없이 적당한 외모였다. 하지만 자꾸 남자의 발뒤꿈치에 있던 군더더기들이 생각나 빨리 그를 지나쳐 나왔다. 앞으로 수영에만 집중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참으로 잘 된 일이라고 생각했다.
_이도나 「이달의남자」
빨리 읽은데는, 분량도 한 몫 했다. 다 해서 100페이지가 안된다. 아주 바람직한 분량이다. 300페이지가 넘는, 일반적인 책의 분량은 너무 두껍다. 이걸 언제 다 읽지? 하는 겁부터 나게 한다. 독립서적은 대부분 얇아서 좋다. 부담 없이 시작할 수 있다. 물론 저자의 역량 부족으로 인한 것이겠지만, 그래도 좋다.
스쳐간 남자들에 대해서 쓴 글이다. 스쳐간 남자라... 누가 들어도 호기심이 가는 주제다. 1월부터 6월까지 총 6가지의 가벼운 단상이다. 처음에는 정말 스쳐지나간 정도의 인연이고, 썸이나 고백을 한 정도, 그리고 나중에는 정말 사랑했었던 사람의 이야기도 나온다.
매 순간 쿨한 척 했지만 누군가를 좋아하는 건 매순간이 찌질해져 버리는 일이다. 세상엔 쿨해지지 말아야 하는 것도 있는 법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해 보지만, 찌질한 내 모습으로부터 밀려드는 자괴감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이놈에 조급증만이라도 감출 수 있으면 좋으련만, 조금은 덜 휘둘리면 좋으련만, 조금은 덜 아쉬우면 좋으련만... 왜 나는 이 모든 게 이리도 어려운 것인가.
5월의 기억들은 내리는 이 비에 모조리 씻어버리도록 하자. 당신도 그랬으면 좋겠네.
_이도나 「이달의남자」
너무 얇은 책이라 너무 자세한 이야기를 하면 안된다. 약간 과장하자면, 이 글 읽을 시간에 실제 책을 읽을 수 있다. (과장이다.) 맨 마지막장 인쇄 정보를 보니 2쇄도 찍었다. 대단하다. 많은 사람들이 마음에 들었나 보다. 그리고 바코드 리더기로 (마침 바코드 관련 일을 하고 있었다.) 이 책의 바코드를 찍어보니 (정식 바코드 번호가 아니라) 그냥 날짜가 나온다. 아마 ISBN은 신청하지 않고 임의로 만들었나 보다.
재미있다. 독립출판 서점에 놀러갔다가 이 책을 만나면 사볼 만하다.